우리의 사명 하나, 우리는 사주의 이익을 위해 복무한다. 둘, 우리는 방송을 사주의 홍보수단으로 활용한다. 셋, 우리는 사주와 갈등이 있는 지자체를 보도로 응징한다. 넷, 우리는 사주의 개인일정에 기자들을 적극 동원한다. 일부 지역민영방송의 사유화 행태를 보며 상상해 본 단상이다. 방송의 공공성을 팽개치고 사유물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은 상상보다 더한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사주의 스피커로 전락한 방송은 공해와 다름없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뉴스에서 자사 대주주의 사업체를 노골적으로 홍보한 JIBS제주방송에 법정제재인 ‘관계자 징계’를 내렸다. 해당 방송을 보면, ‘화창한 주말, 나들이객 북적’이란 제목으로 대주주의 테마파크를 낯뜨겁게 조명하고 있다. 심지어 테마파크 대표이사란 자막과 함께 JIBS 대표이사가 “호텔까지 만들어지면 명실상부 제주도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발언을 버젓이 소개했다. 방송 편성권을 남용해 사주의 이익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문제는 이런 행태가 심심찮게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에는 TBC대구방송이 자사가 주최한 뮤지컬 홍보 자막을 전혀 상관없는 프로그램 우측 상단에 장시간 노출해 “시청권 침해와 전파의 사적이용”으로 행정지도인 ‘권고’를 받았다. 또 강원 민방인 G1은 대주주의 건설사 아파트 분양 소식을 전하며, 견본 주택 전경과 로고를 구체적으로 노출해 사실상 분양광고를 했다는 이유로 법정제재인 ‘경고’를 받았다. CJB청주방송은 매년 자사가 주최한 골프대회를 보도하며 회장의 티샷 장면을 내보내고, KBC광주방송은 대주주가 시공사로 참여한 초고층 주상복합건물 건축허가 심의가 미뤄지자 열흘 연속으로 건축 행정을 비판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자본의 전파 사유화가 오랫동안 뿌리 깊게 퍼져있는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민영방송 대주주의 전횡은 소유와 제작이 명확히 분리되지 않은 제도적 탓이 크다. 방송사 재허가 때 방송콘텐츠를 주로 살피다보니, 대주주 사익을 위한 편집권 훼손엔 등한시한 측면이 많다. 그동안 전문가들이 대주주 소유지분을 40%에서 더 낮추고, 사장임명동의제와 소유·경영 분리를 재허가 조건에 넣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왔지만 방송통신위원회는 권한 밖이라며 난색을 표해 논의가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민방의 방송 사유화를 보면 좀 더 적극적인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팔짱을 끼며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버리고 방통위의 공적 임무를 되새겨야 한다.
사실 지역의 토착 자본이 언론사를 소유하고자 하는 이유가 방송의 공공성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지역 민방뿐 아니라 지역 신문사들의 대주주가 주로 건설사들인 것은 언론을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시키려는 목적이 가장 크다는 방증이다. 방송이 대주주의 자산 증식을 위한 방패이자 수단으로 변질된 상황을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본이 권력이 된 지금, 언론이 겨눠야 할 권력에 대한 감시는 자본으로 향해야 한다. 소유와 방송 제작이 분리되지 않고는 대주주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방송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아무리 지키고자 해도 대주주를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인 현실의 벽이 높다. 국회가 관련 법률 제정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1990년 민영방송의 탄생은 언론자유를 갈망한 민주화의 산물이다. 민주주의를 열망한 시민의 힘이 뿌리다. 공공의 이익에 복무해야 할 책무가 있다. 방송이 사주의 소유물이 돼서는 안 될 이유다. 부끄럽지 않는 언론의 길, 그 출발은 부당함과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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