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지난 25일 KBS를 상대로 25억3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에 더해 한국당은 공직선거법,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양승동 KBS 사장, 엄경철 앵커 등 제작진 7명에게 각각 1000만원씩 민사상 손해배상도 청구했다. KBS ‘뉴스9’가 지난 18일 민간으로 확산된 일본 제품 불매운동 내용을 보도하면서 횃불 모양의 한국당 로고와 ‘NO, 안 뽑아요’라는 문구를 겹쳐 방송한 것은 악의적인 야당 모독이자 사전 선거운동이라는 것이다. 한국당은 이날 국회의사당 앞에서 ‘KBS 수신료 거부를 위한 전국민 서명운동 출정식’도 열었다.
KBS는 지난 19일 방송에서 “한국당 로고를 사전에 걸러내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고 했지만 결코 일회성 사과로만 넘길 일은 아니다. 어이없는 방송사고는 KBS 뉴스의 경쟁력과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엄중한 사안이다. 그렇다고 선거법을 거론하며 손해배상까지 청구한 한국당의 행태는 납득하기 어렵다. 수신료 거부 출정식에서 “친북좌파 세력들이 KBS를 점령해서 문재인 홍보본부로 만들어 버렸다”, “민노총 산하 조합원들이 합세해서 KBS를 주무르고 있다”라는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발언도 부적절하다. 언론사에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고 색깔 공세를 펴는 것은 KBS 구성원들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방송사고를 기화로 KBS를 길들이려는 정치공세에 불과하다.
한국당의 무책임한 정치공세와 별개로 최근 9시뉴스에서 잇따른 방송사고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1일 대구·경북 9시뉴스에서 기사 내용과 화면, 자막이 일치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했다. 리포트 1개에 단신 5개, 이날 방송된 로컬뉴스 5분이 통째로 잘못 나갔다. 첫 번째 리포트가 잘못 나간 것을 알았지만 로컬뉴스가 끝나도록 조치가 이뤄지지 못했다. 전례 없는 방송사고로, 그 이유가 황당하다. 앵커는 다음날 아침에 나갈 원고를 갖고 스튜디오에 들어갔고, 뉴스 진행 PD는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방송 전에 앵커의 원고와 화면을 확인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했다. 한국당 로고를 걸러내지 못했다며 사과방송을 낸 지 며칠 만에 대형사고가 터진 것이다.
지난 2월에는 날씨 예보를 하면서 전날 나간 날씨를 방송하는 사고를 내기도 했다. KBS에서 어떻게 이런 방송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가 싶을 정도다. 사고가 되풀이되는 것도 문제지만, 비슷한 유형의 방송사고가 재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이나 제작진의 실수, 근무 기강의 문제로만 볼 사안이 아니다. KBS 취재 보도 시스템 전반에 나사가 풀렸다고밖에 볼 수 없다. 철저한 진상조사와 그에 따른 책임을 묻고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KBS공영미디어연구소가 발표한 2019년 ‘미디어 신뢰도’ 조사에서 KBS의 신뢰도는 1·2분기 모두 JTBC에 이어 2위였다. 시청자들이 방송사고 날까 마음 졸이며 뉴스를 봐야 한다면 신뢰 회복은 요원하다. 아무리 단독 보도로 존재감을 키워도, 주말을 반납하며 태풍 특보를 해도 어이없는 방송사고가 터지면 KBS의 신뢰도는 와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불필요한 정치공세에 빌미를 줄 뿐이다.
KBS는 올해부터 2023년까지 향후 5년간 약 2600억원의 비용 절감을 목표로 비상경영계획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올해 영업손실이 1019억원으로 추정되는 등 재정 위기 탓이다. 비상경영계획으로 재정적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방송사고가 나면 사과하고 넘어가는 안일한 인식으로는 국민 신뢰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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