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언론인 성범죄, 개인 문제 아니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김성준 전 SBS 앵커가 지난 3일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다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체포 사실이 알려진 8일 SBS는 김 전 앵커가 낸 사직서를 즉각 수리했다. 회사의 발 빠른 조치에 더 큰 논란은 빚어지지 않았지만 지켜보던 사람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외부인들은 ‘몰카범’이 다른 사람도 아닌 SBS 메인 뉴스인 ‘8뉴스’를 수년간 진행했던 간판 앵커라는 사실에 아연했고, 내부에서는 인망이나 실력 면에서 별다른 구설에 오른 적 없던 ‘믿음직한 선배’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데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김 전 앵커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믿음직한’ 언론인이 성희롱·성폭력의 가해자로 밝혀지는 경우는 최근 비일비재했다. KBS의 13년차 팀장급 기자는 후배 기자들과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을 수시로 술집과 노래방 등에 불러 신체 접촉을 하고 성희롱적 발언을 한 사실이 밝혀져 내부적으로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징계를 받은 기자는 자숙하기보다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내 “징계가 너무 과하다”는 판정까지 받아냄으로써 또 다른 논란을 빚어내는 중이다. 지난 4월에는 약 200명의 언론인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취재 중 획득한 ‘클럽 버닝썬 영상’, 성폭력 피해자 등의 신상 정보, 성관계 영상 등을 유포·공유하는 행위가 발각되기도 했다. 서로 성매매 업소를 추천해주기도 한 ‘기자’들의 낯 뜨거운 행각이 드러나며 그러잖아도 휘청이던 한국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또 한 차례 금이 갔다.


쉼 없이 터져 나오는 사건·사고들은 이것이 결코 소수의 일탈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해준다. 지난 5월 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가 개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최이숙 동아대 교수의 발언을 빌리자면 일련의 사건들은 “일부 언론인들의 일탈이나 일부 남성기자들의 박약한 젠더 감수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지난 수십 년간 언론계에서 취재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용인해왔던 문화가 만들어낸 역사적 구성물”이다. 최 교수는 “외적 압력에서 언론의 자유와 언론인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진 나머지 내부의 성차별적 문화에 대해 성찰하는 데는 인색했”던 과거도 지금의 상황을 초래한 이유로 지적했다. 말하자면 언론은 거대한 악과 싸우느라 우리 안의 괴물이 자라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이다.


언론 전반의 ‘박약한 젠더 감수성’은 언론 불신을 초래하기도 한다. 언론인의 일탈은 단순히 나쁜 행위 이상의 무게감을 지니기 때문이다. 일례로 김 전 앵커의 경우 범죄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몰카(불법촬영)’, ‘성범죄’ 등에 일침을 가했던 그의 발언들이 모두 불려 나와 조롱거리가 됐다. 그의 메시지는 여전히 좋은 의미를 담고 있지만, 메신저가 망가진 순간 좋은 메시지마저 퇴색된 것이다.


언론인의 직업윤리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시대에 걸맞은 감수성을 갖추는 일은 기본이다. 남성 위주의 조직 문화 속에서 오랫동안 방기해왔던 젠더 감수성을 빠르게 회복해 ‘시대착오적 언론’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는 일이 급선무다. 그리고 그 감수성은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은 왜 보고 있나”라고 하시던 성철 스님의 법어는 외피에만 집착해 본질을 꿰뚫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격언처럼 쓰이지만, 언론인들이라면 조금 달리 새겨야 한다. 사람들은 우리가 말하는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심지어 우리의 손가락 끝까지 지켜본다. 그러니 더 정확한 진실과 정의를 전달하고 싶다면 손가락까지도 빠짐없이 가꿔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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