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사이트에서 ‘기자’를 검색하면 종종 ‘기레기’라는 연관 검색어가 노출된다. 2010년 처음 이 단어가 등장했을 때, 그리고 세월호 참사 즈음 ‘기자 집단은 잠재적 쓰레기 집단’이라는 인식이 퍼지게 됐을 때 언론계가 받았던 충격이 상당했지만 어느새 ‘기레기’는 일상어가 됐다.
요즘 ‘KNN 기자’를 검색하면 ‘기레기’가 따라붙는다. 올해 초 알려진 인터뷰 조작사건 때문이다. KNN의 모 기자는 부산 신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도와 노년층 피부건조증 관련 보도를 하면서 자신의 음성을 변조해 취재원을 인터뷰한 것처럼 조작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4일 “전례 없는 허위방송으로 시청자를 기만했다”고 지적하고 지상파 방송사에 대해선 처음으로, 최고수준 제재인 과징금 처분을 의결했다. 정상적인 취재활동을 하는 기자라면 이 지적에 토를 달지 못한다.
방송 인터뷰 조작은 놀랍게도 처음이 아니다. MBC를 퇴사한 김세의 전 기자는 주제가 다른 여러 방송 리포트에 한 사람으로 추정되는 인터뷰이를 등장시켰다. MBC 기자협회와 노동조합이 2016년 당시 원본파일을 통해 목소리들이 같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강하게 진상조사와 보도준칙 마련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묵살했다. 그리고 3년 만에 KNN에서 기자 본인의 목소리를 활용한 조작사례까지 등장했다.
‘우라까이’를 넘어 아예 대놓고 베낀 기사까지 나왔다. 세계일보 기자는 SBS ‘취재파일’이 보도한 라돈의 위험을 경고하는 기사 절반 분량을 그대로 베꼈다. 취재파일을 작성한 기자가 항의하자 사과하고 기사를 내렸다. 중앙일보의 모 특파원은 뉴욕의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된 칼럼을 쓰면서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을 상당 부분 인용하고도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레거시 미디어에는 혹독하고 전통적인 트레이닝 시스템이 존재하기에 좀 더 나을 거란 막연한 기대가 깨졌다. 동료들의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엑스맨’들 때문에 기자들은 힘이 빠지고 억울하다.
온라인을 통해 유통되는 기사 비중이 높아지면서 기자들은 ‘더 빨리, 더 많은’ 기사를 생산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노동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줄이면서 양질의 기사를 더 많이 생산한다는 건 애초에 양립할 수 없는 가치일거다. 그러나 기사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사소한 팩트 하나 더 챙기려 아등바등하는 대부분의 기자들은 양립하기 힘든 가치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점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조작과 왜곡은 기자 개인의 직업윤리를 넘어 언론사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문제이다. KNN은 이번 과징금 처분으로, 다음 방송사 재허가 심사 방송평가에서 20점을 감점 받게 된다.
우리 자신과 뉴스룸의 시스템을 돌아보고 ‘기레기’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제 어지간한 네티즌 수사대가 검증 못하는 내용은 없다. 뒤늦게 밝혀져 창피당하지 말고 급할수록, 바쁠수록 철저히 검증하자. ‘온라인판과 오프라인판을 관리하는 조직이 달라 실수했다’는 식의 변명은 먹히지 않는다. 독자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구분하지 않는다. ‘방송뉴스는 작업과정이 세분화 돼 실수를 거르기 힘들다’는 변명도 있다. 안 통한다. 뉴스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관리하고 검증하도록 데스크 조직을 두고 있다. 그리고 기자들 스스로 프로페셔널리즘을 갖추자. 본인이 맡은 분야를 깊이 공부하고 스스로 검증하며 직업윤리를 철저히 지켜야 살아남을 수 있다. 독점적으로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지금 시대의 기자라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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