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남한테 자리를 빼앗길까 애가 탄 듯, 윤도한씨는 방송사에서 명예퇴직한 지 8일 만에 기자에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으로 옮겼다. 제안을 거두어버릴까 다급한 듯, 여현호씨는 신문사에 사표 낸 지 이틀 만에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 당장은 옮길 수 없습니다. 제가 국정운영에 정말 필요한 사람이라면 시간을 좀 주십시오. 회사를 정리하고, 1년은 객관적으로 국정운영을 살피겠습니다. 그때도 제가 필요하다면 불러주십시오.” 이랬으면 어땠을까. 그러기엔 제안이 너무 달콤했는지, 달음박질로 북악산 밑 파란 지붕으로 달려갔다.
수십 년 언론인의 삶이 너무 고달팠나보다. 대쪽 같은 자존심 하나로 권력에 무릎 꿇기를 거부한 조선, 동아투위 선배들의 결기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래도 ‘기레기’라는 소리는 듣지 않기를 바랐다. 감시견은 못되어도 권력의 문지기로 기자 생활의 종지부를 찍지 않았으면 바랐다.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게 기자의 본분임을 잊지 않으려는 많은 기자들이 너무 순진했다. 기자에서 하루아침에 청와대로 직행한 많은 선례를 보고도 미처 몰랐다. 청와대가 얼마나 대단한 꽃길인지. 불면의 밤을 보내며 며칠 동안 계산기를 두드렸을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화려한 봄날을 꿈꾸며.
청와대의 안이한 언론관도 정권을 떠나 반복되는 기자의 일탈에 한 몫 한다. 언론과 권력이 긴장 관계를 유지할 때 사회가 건강해진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언론인을 권력의 나팔수로 손쉽게 써 먹으려는 태도가 무척 실망스럽다.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 하락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한겨울 곶감 빼먹듯 하나 둘 기자들을 빼가는 행태는 과거 정부와 다를 바 없다. 권력과 언론의 관계는 정부의 성격에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적폐 정부의 언론인 청와대 직행은 불륜이고, 촛불 정부의 언론인 직행은 로맨스일 수 없다. ‘DNA가 다르니까’ 이번 정부의 인사는 선의로 봐달라고 하고 싶을지 모르지만, 지켜야 할 선을 넘어섰다.
무엇보다 청와대로 직행한 두 전직 기자가 국민소통과 국정홍보를 담당하는 자리로 옮긴 부분이 매우 우려스럽다. 청와대로 옮기며 그들의 동료들과 얼마나 소통했는지 의문이다. 그들이 몸담았던 언론사 노조의 성명을 보면, 소통은 아예 없었던 모양이다. 한밤의 기습작전처럼, 사표를 던지고 훌쩍 떠난 모습에서 혹여 소문이 날까 두려웠던 모양이다. 인사야 뚜껑을 열 때까지 아무도 모른다지만, 그런 비밀주의로 앞으로 어떻게 소통을 할지 벌써 걱정이다. 시간이 지나면 비판의 목소리도 수그러들 것이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두 기자는 언론사 후배들을 만나 웃으며 국정홍보를 할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씁쓸하다.
악습을 끊어야 한다. 고위공직자들이 퇴직 뒤 유관업체로 바로 가지 못하게 취업제한 규정을 두듯, 언론계도 강한 윤리규정을 두어야 한다. 언론사를 그만두고 기자로 출입했던 곳에 바로 직행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직업선택의 자유를 말하지만, 언론인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지금 자정노력을 개개인에게 맡길 만큼 한가하지 않다.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갔던 관행이 오늘의 착잡한 현실을 불렀다. 한때 기자였던 두 사람에게 요구한다. 언론윤리를 팽개친 행동에 사과하라. 청와대에 요구한다. 언론은 권력의 부속품이 아니다. 다시는 이런 행태를 반복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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