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KBS 수신료 거부운동과 함께 수신료 분리징수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이름도 거창한 ‘KBS 헌법 파괴 저지 및 수신료 분리징수 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수신료 강제징수를 금지함으로써 KBS의 편향성을 바로잡고자 한다”며 분리징수의 의도를 명확히 밝혔다. KBS의 보도가 진짜 편파적인지는 잠시 논외로 하자. 각자의 입장에 따라, 이념에 따라, 정파적 이익에 따라 개개인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하는 지점은 이러한 수신료 분리징수 논란이 오랜 기간 반복되어 왔다는 것이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참여정부 시기인 2003년으로 가보자.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KBS를 시청하지 않는 사람까지 수신료를 강제로 납부하게 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이념적 편향성과 뉴스 공정성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며 수신료 분리징수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KBS는 “수신료 분리징수로 재정이 취약해질 경우 1TV 광고와 수신료 인상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고 반발했고 시민단체들도 “수신료를 볼모로 KBS를 장악하려는 거대 야당의 음모”라고 맞받았다. 결국 법안은 통과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흘러 정권이 바뀐 뒤엔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박근혜 정부 시기였던 2014년엔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병합 징수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노 의원도 “(통합징수 방식은) 소비자 선택권 제한은 물론 KBS가 송출하는 방송을 시청하지 않는 시청자에게까지 수신료를 강제 납부하게 하는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10년 사이 같은 주장을 두 당이 번갈아가며 한 것이다. 그러더니 2019년 벽두부터 다시 자유한국당이 나섰다. 공교롭게도 이 사안을 다뤄야 하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노웅래 의원이다.
이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두 거대 정당은 야당 시절 언제나 KBS의 보도가 편파적이라 여겼으며, 그러한 KBS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수신료 분리징수를 들고 나왔다. 반대로 여당 시절엔 수신료 인상안, 중간광고 허용 등의 당근을 흔들어댔다.
실제로 KBS 보도가 편파적인 때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수신료가 정치권의 흥정거리가 될 수 없으며, 공영방송을 길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수신료를 전기요금에 통합 징수하는 방식은 다분히 비정상적이지만 그보다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지금의 KBS는 ‘대통령/여당-방송통신위원회-이사회-사장’의 수직 체계로 지배된다. 사장은 대통령과 여당의 선호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KBS의 오랜 편파보도 논란은 상당 부분 여기에 기인한다. 국회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방송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지만 어떤 진전도 없는 상황이다. 이사 추천에 정치권 등 외부 개입을 금지하고 사장 선임 과정에 시민과 종사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내용의 법안이 통과된다면 여야 어느 한쪽도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단순한 과반수 찬성으로 공영방송 사장을 결정하는 국가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자유한국당이 KBS의 편파보도를 문제 삼겠다면 당장 지배구조 개선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정부 여당도 논의에 동참해 정권에 따라 보도 방향이 오락가락하는 KBS 뉴스를 바로잡아 국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지배구조 개선이 공영방송 독립 및 정상화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조차 해결하지 못하면서 수신료 분리징수를 내세워 공영방송을 압박하는 정치권의 행태는 이제 그만둘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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