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과 엽기행각으로 구속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검찰에 송치됐다. 경찰 수사에서 음란물 유포부터 상습폭행, 마약까지 ‘범죄 종합세트’라 할 만한 양 회장의 범죄행위가 드러났다. 양 회장뿐 아니라 관련 업체 전·현직 임직원 등 19명과 음란물 업로더 61명 등도 무더기로 입건됐다. 보름여 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 사건은 독립언론의 보도로 세간에 알려졌다. 우리는 이 사건이 기사화를 거쳐 사회에 파장을 미치기까지의 과정에 주목한다.
진실탐사그룹 ‘셜록’ 대표 박상규 기자는 첫 제보를 받고 2년 동안 한국미래기술을 들여다보며 취재를 이어갔다. 양 회장의 비위와 음란물 카르텔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박 기자는 “셜록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사건 해결이 안 될까봐, 제보자들과 피해자가 양 회장에게 보복 당할까봐” 이 ‘특종’을 대형 방송사에 가져갔다. 보도만 해준다면 모든 자료와 취재원을 넘겨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대형 방송사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삼성 같은 대기업도 아닌 중소기업에서 벌어진 일을 보도할 필요가 있냐’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2일까지 ‘몰카제국의 황제’라는 5개 시리즈 영상이 공개되자 대형 방송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영상이 공개된 지 일주일 만에 누적 조회수는 250만 회를 훌쩍 넘어섰다. 이 수치는 국내 메이저 신문의 발행부수를 능가함은 물론이고, 대표 방송 KBS 9시 뉴스의 일일 시청자수에 근접한 것이다. 박 기자의 제안을 거절한 방송사들은 거꾸로 박 기자의 특종을 따라가며 취재해야 했다.
‘셜록’은 구성원이 3명에 불과한 비영리 언론이다. 기존 언론사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규모임에도 그동안 익산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 무기수 김신혜 사건 등을 보도했다. 이번 양 회장 사건을 통해 셜록은 언론사의 시스템과 규모, 영향력에 기대지 않고 오직 뉴스 자체의 힘만으로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인해 시작된 변화의 폭풍이 대형 언론사의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지면과 TV화면으로부터 독립한 뉴스는 이제 대형 윤전기도, 수천만 원짜리 카메라도, 거대한 송출 시스템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들은 지면 중심, 메인뉴스 중심, 출입처 중심의 취재 제작 관행과도 이미 작별했다.
물론 기존 언론사 기자들에게는 매일 매일 채워 나가야 할 지면이 있고 뉴스 큐시트가 있다. 모든 기자가 늘 탐사보도만 하고 늘 특종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른바 기자들의 ‘루틴’은 뉴스의 근간을 이루는 스트레이트 기사를 생산해내며, 이는 전체 뉴스 생태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업무이다. 그러나 미디어 지형이 변화하는 이 시점에 박 기자의 지적은 아프게 다가온다. “기자들은 세상에 필요한 기사가 아니라 회사에 필요한 기사, 면을 채우기 위한 기사를 생산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사건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바로 셜록이 ‘뉴스타파’와 협업했다는 사실이다. 취재 현장에서 서로를 경쟁자로 생각하는 기자들에게는 매우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특종(exclusive)은 말 그대로 배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셜록과 뉴스타파는 특종 욕심을 버리고 협업을 통해 성과를 일궜다. 기존 언론들은 인력 부족과 포털의 횡포를 탓하기에 앞서 이런 협업 모델을 연구하려는 노력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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