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고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 만남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뛰는 기자들, 수첩과 펜을 들고 기약 없는 뻗치기까지. 체감온도 37도를 웃도는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마이크를 잡고 생중계한 기자들도 있다. 지난 9일부터 일주일간 싱가포르에 머물며 실시간으로 현지 상황을 전한 엄지인 MBC 기자의 이야기다.
“회담 당일 카펠라호텔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어요. 북한도 미국도 북미회담에 대해서 투명하게 일정을 공개하지 않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초미의 관심사잖아요.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즉흥적이면서 방대한 양의 취재, 관심도는 높지만 취재 정보와 자산은 한계가 있는 상황이었죠.”
싱가포르의 엄격한 치안도 취재에 걸림돌이었다. 대사관 취재 시 여권 조사는 필수였고, 촬영이 금지된 곳도 수두룩했다. 어떤 기자는 경찰 조사까지 받았다. 김 위원장이 나타나기 직전과 직후에는 기자들의 휴대폰과 노트북 사용이 금지됐다. 엄 기자는 “싱가포르의 통제를 어기면 후폭풍이 어떤지 알고 있어서 기자들이 선을 넘지 않으려고 했다”며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메신저로 전송받고 중계를 소화했다”고 설명했다.
엄 기자는 올 초 통일부 풀 기자단으로 평양에 간 경험이 있다. 북측 고위 인사들과 안면을 튼 상황이라 이번 회담도 그에게는 낯설지 않다.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미국보다는 북측 인사에 더 관심을 기울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북한과 미국 양측이 모두 예측불가능하고 치적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 이대로 등을 돌리지 않을 거란 생각은 했다”며 “북측 인사와 인터뷰나 가벼운 대화라도 나누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고 했다.
“2012년에 통일부를 출입하고 5년 만에 다시 복귀했거든요. 그동안 통일부 기자들이 현장을 간다는 게 쉽지 않았잖아요. 지난 6년 동안 못한 걸 6개월 동안 다 해본 것 같아요. 시대의 전환점에 있는 느낌이랄까요. 기자로서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영광스런 취재 경험이고 소중한 자산이죠.” 엄 기자는 “9월 유엔총회에서 만약 북한의 지도자가 연설하게 되고 그걸 계기로 유엔이 제재를 해제하거나 정상적인 국교 관계를 인정해주는 단계로 간다면 점점 관계 진전이 빨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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