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모델 몰카 사건이 던진 질문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집회에서 다음카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를 통해 모인 여성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참가자들은 “수사당국이 불법 촬영사건에 있어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에 따라 성차별 수사를 하고 있다 사법불평등과 편파 수사를 규탄하고 몰카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뉴시스)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집회에서 다음카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를 통해 모인 여성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참가자들은 “수사당국이 불법 촬영사건에 있어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에 따라 성차별 수사를 하고 있다 사법불평등과 편파 수사를 규탄하고 몰카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뉴시스)


지난 12일, 서울 마포경찰서 앞에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한 대학의 회화 수업에서 남성의 나체 사진을 불법 촬영해 인터넷에 유포한 혐의로 체포된 20대 여성의 영장실질심사가 예정된 날이었다. 경찰은 이 여성에게 수갑을 채우고 마스크를 씌운 채 서부지방법원으로 이송하는 장면을 취재진에게 공개했다.


어찌 보면 흔한 대한민국의 사법절차 장면이다. 기자들은 물론 대중에게도 익숙한 광경이다. 그러나 여성을 불법 촬영해 인터넷에 유포한 혐의로 체포된 남성의 영장실질심사에 이렇게 취재진이 몰려드는 경우란 거의, 아니 어쩌면 전혀 없다는 점도 우리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 남성이 연예인 같은 유명인이거나 사회지도층에 해당하는 명사가 아닌 이상 말이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2016년 불법 촬영 혐의로 검거된 피의자는 5600여 명이었다. 97%가 남성이었다. 여성들은 이와 같이 여성이 피해자인, 훨씬 더 많은 ‘몰카 범죄’에 대해서도 국가가 단호하게 대응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용의자 체포 다음날인 11일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는데, 청원 1주일 만에 39만명이 참여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번 사건의 피의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수사에서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일부 여성단체는 “불법 촬영 피해자의 대다수인 여성들은 경찰의 이례적인 적극성에 박탈감을 느낀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불법 촬영·유포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여성 피의자라고 해서 더 고강도로 수사하고, 남성 피의자는 비교적 선처한다는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 한 언론의 팩트체크에 따르면 최근 5년 간 몰카 사건에 있어서 남성 피의자의 구속률이 여성 피의자보다 3배 가량 높았다. 이번 사건의 여성 피의자는 6일 만에 체포됐지만, 전례를 보면 하루 만에 체포된 남성 피의자도 있다. 그렇게 볼 때 여성들이 느끼는 박탈감의 실체는 경찰의 고강도 수사라기보다는 이 사건이 이토록 화제가 되고,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언론은 이번 사건에 왜 이렇게 관심을 보인 것일까? 큰 화제였기 때문이겠지만, 저널리즘의 일반적 원칙에도 충실한 결과일 것이다.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사가 되지 않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가 된다’는 익숙한 원칙 말이다. 흔한 사건에 주목하지 말고 이례적인 사건에 주목하라는 주문 말이다.


그런 점에서 ‘20대’ ‘여성’ ‘모델’이 몰카 사건의 ‘피해자’가 아니라 ‘피의자’가 된 이번 사건은 언론의 생래적인 욕망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동시에 이 점은 그토록 흔하고 빈번한 남성 몰카 범죄에 대해 언론이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현실에 대해서도 충분한 설명을 제공한다.


그러나 언론에 있어서는 ‘흔하기 때문에’ 기사가 되지 않을 수 있어도, 일상적 피해자인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흔하기 때문에’ 그런 유형의 범죄가 더욱 큰 공포를 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자문해 본다. 남성이 주요 간부를 차지하는 등 주류인 언론에서 그동안 이 간극을 섬세하게 살피지 못해왔던 게 아닐까? ‘또 남성 몰카? 기사 안 되네’라고 무심코 판단하면서, 남성 몰카 사건이 가진 일상성과 빈번함으로 인해 여성들이 체감하게 되는 공포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못해왔던 것 아닐까? 이번 사건이 언론을 향해 던지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