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한겨레에 칼럼을 쓴 언론인 정경희씨를 상대로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자기 당의 대통령 후보인 이회창씨에 관해 허위의 사실을 공표해 이씨와 자기 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 그 근거다. 정씨는 자신의 칼럼에서 이씨 며느리의 원정출산 의혹, 한나라당의 국세청을 통한 선거자금 모금 혐의 등에 우리 언론이 눈을 감음으로써 공명선거가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스스로 밝힌 칼럼을 쓴 의도와 별개로, 그가 이씨를 둘러싼 이런 의문들에 대해 사실일 개연성이 높다고 본 것은 사실이다.
집권을 노리고 있는 한나라당이 정씨의 이런 비판을 이씨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문제는 반응의 양식이다. 같은 신문에 자기 당 대변인의 반론과 정씨의 재반론이 실려 지상논쟁이 벌어진 판에 언론중재위원회도 아니고 법정으로 달려간 게 공당이 취할 자세인가?
한나라당이 해당 칼럼을 실은 신문은 제쳐두고 정씨 개인에게 거액의 배상을 청구한 의도도 의심스럽다. 이런 법적 대응이 결과적으로 소송 주체인 한나라당과 이씨에 대한 일선 언론인들의 비판을 위축시킬 것임은 자명하다. 이로써 한나라당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씨에 대한 언론의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무엇보다 이번 소송으로 드러난 것은 언론에 대한 한나라당과 이씨의 인식의 수준과 지평의 한계이다.
우리 법원은 언론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기사화한 내용이 사실상 허위라고 하더라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 위법성이 없다는 판례를 남기고 있다. 정씨의 칼럼은 언론의 불공정성을 비판한 것으로서 공공의 이익에 부합될 뿐더러, 설사 한나라당이 주장한 대로 허위의 사실을 다뤘다고 하더라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정황이 있다. 법률가 출신인 이씨와 그의 법률 담당 보좌진이 이 점을 모를 리 없다.
100평짜리 가회동 빌라 3개층 중 이회창씨가 거주용으로 쓴 것은 한 층뿐이라는 한나라당 대변인의 반박은 법률에 대한 기술적인 해석에 치우쳐 있다. 명색이 대법관 출신인 이씨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한나라당 서상목 의원이 스스로 의원직을 내놓은 마당에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과 한나라당의 상관관계도 입증된 것이 없다’는 해명도 궁색하기는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은 그냥 원내 제1당이 아니다. 의석의 절반을차지하고 있는 의회 지배적 정당이다. 기업에 비유하면 한나라당은 합법적으로 국회의 경영권(입법권)을 쥐고 있는 ‘오너’인 셈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당의 당적을 버림에 따라 여당이 구심점을 잃은 상태에서 한나라당에 쏠리는 국민들의 기대와 우려는 커질 수밖에 없다. 책임정치에 대한 기대요, 힘의 과시와 강자의 오만에 대한 우려이다.
이회창 씨는 국민들의 질책이 더 따가와지기 전에 직접 나서 정씨에 대한 소송을 취하하라. 법률가 출신 후보에게 기대하는 것은 법치주의지 법만능의 사고방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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