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IT 쪽 최대 이슈는 미국 망중립성 폐기 소식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들을 통신법 706조의 타이틀1(정보서비스)으로 재분류한 사건이다. 2015년 이후 미국에선 인터넷사업자에 대해 통신서비스에 준하는 의무를 부여해 왔다. 망을 오가는 콘텐츠에 대해 차별금지와 차단금지 의무를 부과받았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이 의무를 면하게 됐다.
대신 앞으론 연방거래위원회(FTC)를 통한 사후 규제를 받게 된다. 통신의 특수성을 감안한 망중립성이란 사전 규제 대신 시장의 보편적인 경쟁법의 적용을 받는 쪽으로 무게 중심이 바뀌게 됐단 얘기다.
물론 이 조치가 갖는 의미는 적지 않다. 이론적으론 망 사업자들이 콘텐츠에 대해 차별을 할 수도 있게 됐기 때문이다. 구글, 넷플릭스 같은 인터넷 기반 서비스들이 망 사업자의 손아귀에 놓이게 됐단 보도가 나오는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적으로 그렇단 얘기다. 여전히 경쟁법을 기준으로 한 규제가 존재하고 있다. 여기에다 치열한 시장 경쟁 상황 역시 고려해야 할 변수다. 모든 업체가 담합을 하지 않는 한 전횡을 휘두르긴 쉽지 않다.
미국 언론들의 대체적인 논조 역시 “망중립성 원칙이 폐기되더라도 당장 일반인들의 인터넷 경험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란 쪽이다. 다만 장기적으로 망 사업자들이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을 때 시장 변화를 몰고 올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국내 언론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좀 더 흥분하고 있단 점이다. 대체적인 보도 논점은 크게 두 가지였던 것 같다.
첫째. 우리가 알던 인터넷은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경우에 따라선 인터넷 종량제가 나올 수도 있다. 둘째. 미국이 망중립성 폐지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둘 다 중요한 논점이다. 경계하고 따져볼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렇단 얘기다. 미국 망중립성 폐지 이후 인터넷 종량제가 등장할 수도 있단 보도는 너무 나간 대표적인 사례다. 망중립성과 종량제는 별개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이익을 현저하게 해치고 엄청난 추가 요금 부담을 안기는 조치에 대한 우려도 마찬가지다. 경쟁법들이 그렇게까진 허술하진 않다.
미국 망중립성 폐지를 곧바로 한국의 정책과 연결하는 것도 다소 성급하단 생각이 든다. 인터넷은 글로벌 이슈이지만, 인터넷 정책의 방향을 잡는 건 개별 국가 차원의 이슈다. 산업 상황과 정책 우선순위에 따라 결정할 부분이란 얘기다. “미국이 망중립성 폐지했다. 한국은 어떻게 할 거냐? 빨리 답을 내놔라”고 묻는 건 좀 많이 성급해 보인다. 두 나라는 서로 법률이 다르고, 산업 상황도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의 이번 조치가 다소 놀랍긴 했다. “설마”했던 일이 진짜로 일어난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 따져보면, 이번 조치 역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우리가 봤던 여러 조치 중 하나일 따름이다. 뉴미디어 보다는 전통 산업 쪽에 더 강한 지지 기반을 갖고 있는 트럼프의 성향을 잘 보여준 사건인 셈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사건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우리 입장에선 오히려 FTC를 중심으로 한 미국식 사후 규제 조치가 인터넷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논점이 될 것 같다. 그게 이번 사태를 주체적으로 바라보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도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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