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4시간에 걸쳐 마라톤 회의를 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의 결론은 세 가지였다. 첫째, <2016 MBC 경영평가 보고서>를 폐기했다. 둘째, 파업 상황에 대해 MBC 임원들의 보고를 청취하지 않기로 했다. 셋째, 김장겸 사장을 방문진에 출석시키지 않기로 했다.
세상에 무슨 이런 관리 감독기구가 있는가. <2016 MBC 경영평가 보고서>에는 국민 세금인 방문진 예산 6000여만원이 들어갔다. 그런데 구 여권 이사들은 보고서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며 채택을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수적 우위를 앞세워 표결로 폐기했다. “MBC의 방송통신위원회 법정 제재는 지상파 3사 가운데 건수와 감점에서 가장 많았고, 객관성과 공정성 관련 사유에 따른 제재가 8건에 이른다”, “<100분 토론>의 경우 일부 패널의 막말이나 편파적인 패널 선정이 공영방송 MBC의 공정성과 신뢰성 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등 명백히 사실관계에 근거한 보고서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속내는 이 보고서를 채택할 경우 2016년 당시 보도본부장이었던 김장겸 사장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걱정이다. 결국 구 여권 이사들은 팩트에 대해선 반박을 못 하고 필진 자격과 일부 표현만을 문제 삼다가 보고서 자체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파업 상황 파악 및 관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MBC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파업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이와 관련해 임원들의 보고도 듣지 않겠다, 사장도 출석시킬 필요 없다니 이게 무슨 의미인가. 한 마디로 이심전심이라는 것 아닌가. 굳이 불러서 육성으로 듣지 않아도 다 파악 가능하니 괜히 부를 필요 없다는 것 아닌가. 다시 말해 고영주 이사장을 위시한 구 여권 이사들은 MBC 파업 사태에 대해 “정권을 등에 업은 무소불위의 언론노조를 상대로 무슨 부당노동행위를 했겠습니까”라는 김장겸 경영진의 인식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음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KBS 이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주 열린 이사회에서 일부 이사들은 파업 사태에 대한 경영진의 대책을 촉구했지만, 이사회에 출석한 부사장은 “KBS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고 구 여권 이사들 역시 별다른 상황 파악 및 사태 해결 의지를 드러내지 않았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뜻밖에 영화 <공범자들>을 관람한 이인호 이사장은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도 “고대영 사장을 해임할 충분한 이유가 없다”, “KBS가 다른 방송사에 비해 최순실 국정농단 보도를 잘 했다고 생각한다”라며 KBS 파업 사태를 해결할 의지가 없고 오직 고대영 사장을 수호할 계획임을 드러냈다.
공영방송 파괴의 주연으로 구성원들의 거센 퇴진 촉구를 받고 있는 고대영, 김장겸 두 사장이 끝까지 버티는 이상 양대 공영방송 파업사태는 장기화될 우려가 크다. 결국 당사자들이 거취를 결단하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경영진에 대한 인사권을 갖고 있는 KBS 이사회 및 방송문화진흥회가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 이사회의 다수를 점유하고 있는 구 여권 이사들은 방송 정상화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사장과 경영진을 비호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KBS 이사회와 방문진이 제 역할을 못한다면 방통위가 나서야 한다. 방통위까지 직무유기를 한다면 공영방송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우리가 그간 거듭 강조해왔듯 공공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외면하는 공영방송을 개혁하는 것은 방송장악이 아니라 관리 감독기구로서 방통위가 해야 할 의무다. “최순실 국정농단 보도를 중심 잡고 잘 했다”고 평가하는 공영방송 경영진, 상습적으로 말 안 듣는 구성원들 쫓아내고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은 공영방송 경영진이 과연 공공적 기능을 수행해 왔다고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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