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KBS다. 우리가 KBS다. 국민의 KBS다.”
공정방송을 되찾기 위한 기자들의 외침이 거세다. MBC에 이어 KBS 기자들도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지난 28일 0시, KBS 기자들은 ‘나는 뉴스 제작을 거부한다’는 문구가 적힌 종이 한 장을 책상위에 올려둔 채 회사를 나섰다. 그렇게 KBS 기자 470명이 공정방송 쟁취를 위한 투쟁의 길로 들어섰다. 국민의 수신료로 만들어진, 그래서 시청자가 주인인 KBS를 다시 국민의 품으로 되돌리겠다는 기자들의 처절한 투쟁이 또 시작됐다.
2014년 6월,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유리한 보도로 일관해왔던 길환영 KBS 전 사장은 세월호 참사 당시 ‘전원구조’라는 치명적인 오보와 구조 작업에 대한 공영방송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책임으로 사장에서 해임됐다. 길 전 사장의 남은 임기를 조대현 사장이 채운 뒤 친 박근혜 정권 인사인 고대영 현 KBS 사장이 사장직을 이어받았다. 뼈아픈 세월호 보도참사를 겪고 공영방송 정상화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분분했던 때였지만 오히려 기자들에 대한 탄압과 독립성 훼손 사례는 더 많아졌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탄핵에 이르게 한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를 직면한 공영방송의 모습은 처참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세상에 알려진 지난해 9월, ‘최순실이 대통령 측근이냐’며 기자들의 보도 요구를 간부들이 묵살한 일은 이미 KBS 내부에 잘 알려진 일화다. 대신 9시 뉴스는 북한 뉴스로 도배됐다. 국정농단 사건의 보도참사는 물론, 원세훈 전 국정원장 녹취록 누락, 청와대 캐비닛 문건 축소 보도 등 사상 최악의 보도 참사가 공영방송 KBS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고대영 사장을 비롯한 보도 책임자들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공영방송을 지키려는 시도에는 징계가 이어졌다. 지난해 고 백남기 농민 사망경위에 대한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민중총궐기 당시, 집회로 인한 피해를 일방적으로 부각하는 리포트를 비판한 기자는 감봉 6개월의 징계를 받았고, KBS가 투자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낮은 평점을 준 영화평론가를 비판하라는 취재 지시를 거부한 기자들은 감봉 2개월씩을 받았다. 그 사이 ‘잡포스팅’이라는 인사제도가 새로 생겨났고, 지역이나 연수원 등으로 내쫓기식 인사가 이어졌다. 당연히 경영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권력을 견제·감시하는 제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10년간 줄곧 상위권을 유지했던 KBS의 신뢰도는 2016년 아예 순위권에서 벗어났다. 권력의 감시견이 되어야 할 공영방송의 독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된 상황에서 고대영 사장의 남은 임기 1년을 기다리는 것은 공영방송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쇄락의 길로 들어서게 할 뿐이다. KBS 기자들이 고대영 체제의 종식을 외치며 제작거부에 나선 이유다.
공영방송을 건강하게 만들고 지키는 일은 KBS 기자들의 숙명이지만 KBS를 다시 국민의 품으로 되돌리는 일은 기자들만의 몫은 아니다. 공영방송이 건강해야 저널리즘이 탄탄해지고 사회의 다양한 이슈들이 그 건강한 저널리즘의 토대에서 논의된다. ‘적폐 청산’이라는 시대정신 앞에 KBS가 서 있다. 눈물을 머금고 취재 현장을 떠나야만 하는 기자들과 5000명의 직원들에게도 고통스러운 싸움이지만 누구보다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기다리는 국민들에게 충분히 고통스러운 기다림이다. 많이 늦었지만 고대영 KBS 사장에 책임있는 결단을 촉구한다. KBS의 정상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겐 시간이 없고, 우리는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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