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초유의 대통령 탄핵, 조기대선, 그리고 9년 만의 정권교체는 한국 사회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국민들은 훼손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사회를 개혁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탄핵의 시발점이 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실상을 파헤치는 데 힘을 모았던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언론들이 돌연 ‘적폐’로 지목됐다. 특히 ‘진보 언론’으로 분류되는 매체들이 이른바 ‘한경오’로 불리며 문 대통령의 열혈 지지자들로부터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됐다.
표지에 문재인 대통령 사진을 쓰고, 영부인에게 ‘여사’ 대신 ‘씨’라는 호칭을, 대통령에게 평어를 썼다는 것 등이 비난의 이유다. 지지자들은 욕설과 비난의 댓글을 달았고, 이에 ‘발끈’한 기자들이 개인 SNS에 글을 올리면서 논란은 확산됐다. 일부 언론사는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고 기자들의 SNS 사용지침을 마련했다.
지지자들이 지적한 해당 기사들은 대부분 새 정권 출범을 반기며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내용과 관련 없는 호칭과 일부 표현이 맥락이 삭제된 채 무차별적 공격의 대상이 됐다. 이쯤 되면 언론의 행위가 아닌 존재가 이들의 비난 대상 같다. 민주주의를 회복했다는데, 언론은 위태로운 살얼음판을 걷는 형국이다.
일각에서는 열혈 지지자들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가 한 요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진보언론이 노 전 대통령을 공격했고, 이 때문에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는 것, “우리가 문재인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언론에 대한 이런 시선은 장기적으로 문 대통령과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잘 한 일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잘못은 비판받고 감시받아야 한다. 언론이 위축돼 비판과 감시의 기능을 상실할 때 민주주의 또한 후퇴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도 언론의 성역 없는 보도로 실체를 드러낼 수 있었다. 지지자들이 문 대통령의 성공을 바란다면, 대통령이 공약과 개혁과제를 잘 이행하는지 살펴보고 감시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文’이라고 적는다고 해서 위상이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국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할 때 그 위상이 내려간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정권에서 보았다.
물론 언론이 불신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SBS의 ‘세월호 인양 고의지연’ 의혹 보도는 제작과정에 총체적 부실이 드러나 관련자들이 중징계를 받았다. 세월호 사건 등에서 정부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고 사실 확인을 충실히 못한 보도 행태들은 ‘기레기’라는 비판을 받게 한 원인이 됐다.
언론의 위상 또한 예전 같지 않다. 디지털 시대에 우후죽순 생겨난 미디어, 클릭 수 경쟁으로 인한 선정적 보도를 일삼으며 언론에 대한 신뢰도 내려갔다. 누구나 정보를 찾을 수 있고 공유하게 되면서 언론만이 유일한 정보창구도 아니다. 새로운 언론 환경에서 언론 또한 진정한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을 놓지 말아야 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4대강은 녹조로 뒤덮여 더 이상 우리가 알던 강이 아니다. 언론 또한 새로운 독자, 새로운 환경에 직면했다. 새로운 정부 뿐 아니라 언론도 시험대에 올랐다. 올바른 저널리즘, 신뢰 회복을 위한 개혁이 언론이 직면한 ‘위기’를 돌파할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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