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독자를 적으로 돌려선 안 된다

[언론 다시보기] 변상욱 CBS 대기자

▲변상욱 CBS 대기자

진보성향의 언론이라 평가받아 온 언론사들이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편향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그 편향이 어느 정도였는지, 다른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지, 그 대가로 치러지는 지금의 상황이 정당하고 적정한지는 짧은 지면에 펼쳐놓기 어려워 보인다. 다만 지금의 국면을 진지하게 살피되 조금 시야를 넓혀 보자는 취지에서 이야기하고 싶다.


2000년 이후 우리 사회에서 몇 차례 벌어진 ‘국민적 저항과 결집’을 흔히 ‘촛불’로 표현한다. 이는 정치권과 정부라는 기존의 국가시스템으로 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국민이 ‘저항언어(counterspeech)’로서 촛불을 켜고 한 곳으로 집결해 의사를 표현하는 비상(非常)적 정치행동이다.


이번 촛불은 대통령 탄핵과 조기대선, 권력교체까지 거센 힘으로 구체제를 몰아붙였다. 문제는 그렇게 결집된 거대하고 거침없는 국민적 에너지가 해소되지 않은 채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아직도 끓고 있다는 점이다. 그 질풍노도의 힘이 다음으로 향할 과제가 적폐청산이라는 건 모두 동의하는 바고 그 시작이 언론개혁이어도 좋다. 다만 국민의 촛불과 함께 해 온 언론사들에게 먼저 타격이 가해지고 수구언론 적폐에 대한 논의로 힘이 더 모아지지 않는 것은 안타깝다.


이 지점에서 언론사와 기자는 질풍노도처럼 몰아치던 촛불의 힘이 방향과 성격을 전환해야 하는 비상한 시점임을 감안해 그 분노와 힘의 성격을 이해하고 힘의 분출구를 제시할 책임이 있다. 그래서 일면 억울하거나 과한 면이 있더라도 ‘언론은 적으로 삼아 마땅한 공적에게 적이 되어 싸우는 것이지 시민과 독자를 적으로 돌릴 수는 없는 것’이라고 SNS를 통해 권면했던 바이다.


또한 질풍노도에 가세한 수많은 사람들이 흐트러짐 없이 절제된 양식과 수위를 지키고 어떤 과함도 없으리라 기대하는 것도 어렵다. 어느 상황에서고 절제된 양식과 수위를 지키는 건 오히려 기자의 책무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민중에겐 민중의 언어와 문법이 있다. 때로 거칠어도 나름의 정치적 의사표현이고 거친 만큼 간절한 외침일 수 있다. 그 거침마저도 진보를 떠받쳐 띄우는 바다로 이해하자 권하고 싶다.


그 다음은 결집된 국민을 무엇으로 규정하고 그 행동을 판단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미 2000년대로 들어서며 학계에서는 ‘민중’, ‘대중’의 시대가 종언하고 ‘다중’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국가와 사회의 발전 정도와 상황에 따라 편차가 있을 것이나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중’은 정치권력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까. 전략과 전술을 스스로 고민하며 정치참여를 업그레이드시키는 진화한 국민의 결속이다. 축제적 성격을 띠고 과격·심각하지 않으면서도 활기 넘치는 새로운 방식의 시민저항이 생겨난 것도 ‘다중’의 특징이다. 또 ‘다중’은 정치적 의견을 분명히 갖고 있으나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건 아니다. 정파들의 이념 논리에 함몰되거나 특정인 지지를 맹목적으로 오래 끌고 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계급적 지위로야 다들 권력이나 부에서 소외된 평범한 개인이지만 자신의 삶과 미래에 대해 당당하게 힘과 의사를 표출하려 하고, 고개 숙이지 않는 소수자가 바로 다중이다. 당연히 항상 특정 정당의 지지자도 아니고, 어느 매체의 고정독자도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충실한 독립된 비동맹 시민군단(軍團)이라는 표현이 차라리 더 근접한 파악일 수 있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 지지 및 지키기’로 결집한 세력도 다중의 한 형태일 수 있고, ‘문빠’라는 과거의 개념을 넘어 사회 변혁운동의 독립성을 확보해 나갈 것이다. 지휘부 없이 SNS 등을 통해 뭉치고 흩어지고 분화하고 진화할 것이라 본다. 대선 직후 벌어진 진보 언론들과 다중의 충돌을 긴 호흡으로 더 멀리 보며 더 우선해야 할 난제의 해결에 머리를 맞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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