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특정후보 죽이기’ 논란이 뜨겁다. 민주당 노무현 고문의 ‘8·1 언론관련 발언’ 보도로 촉발됐다. 언론단체들이 잇따라 성명을 발표, 이른바 ‘빅3’의 보도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경우도 이들 신문의 보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에 대해 동아·조선·중앙은 “사실보도에 충실한 뿐”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언론의 ‘특정후보 죽이기’ 논쟁을 들여다봤다.
경향·한겨레·언론단체
전국언론노조는 지난 11일 ‘동아·조선·중앙은 언론의 금도(襟度)를 지켜라’는 성명에서 “민주당 경선후보들의 신문에 대한 과거 발언내용의 진위를 둘러싼 상식 이하의 난타전에 끼어들어 특정 후보를 연일 공격하며 정치판의 이전투구 당사자를 자처하기에 이른 모습은 차마 눈뜨고 지켜보기 힘들다”며 “족벌언론 3개 신문사가 마치 입을 맞추기라도 하듯 연일 특정 후보에 대한 집중 공격을 퍼붓는 것은 치졸한 세력과시이자 언론의 불순한 권력적 속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언론개혁시민연대도 지난 9일 “정치면 가십성 기사로 끝날 일을 침소봉대하는 이유가 혹시 유력 후보를 사전에 길들이려는 ‘언론’의 음모라면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른바 ‘빅3’의 보도태도가 특정후보를 겨냥하고 있다는 판단은 경향신문과 한겨레도 마찬가지다.
경향신문은 지난 9일자 ‘검증은 없고 공격만 있다’ 제목의 기사에서 “노무현 고문에 대한 언론관 논란이 본궤도를 벗어나고 있다”며 “무엇보다 일부 신문들의 접근방식이 1차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 역시 지난 10일자 사설에서 “몇몇 언론이 최근 보여주는 보도 양상은 단순히 특정 후보와의 갈등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보도의 상식인 사실확인조차 없이 음모론과 색깔론 그리고 ‘8개월 전의 술자리 대화’까지 대대적으로 보도해 민주정치의 과정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겨레는 같은날 미디어면에 ‘조중동 특정후보 죽이기 편파보도 남발’이란 비평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8·1 언론관련 발언’의 진위여부 못지 않게 문제의 ‘정보보고’가 이인제 고문측으로 흘러 들어간 경위에도 관심을 보였다.
경향신문은 지난 6일자 사설에서 “간과할 수 없는 또 다른 문제는 정치인과 언론사 데스크·기자들간의‘위험한 관계’”라며 “경선 과정에서 언론사 데스크가 특정 후보를 지목해 정보를 제공하는 것 등은 정치인과 언론인의 유착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도 같은날 사설에서 “왜곡이건 과장이건, 어떤 의도에서 어떤 경로로 언론사의 내부 문건이 이인제 후보쪽에 흘러 들어갔느냐 하는 점도 밝혀져야 할 것”이라며 밝혔다.
특히 한겨레의 경우 특정 언론의 ‘의도적’ 개입 가능성에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특정후보를 위해, 언론사의 내부정보를 기사화하는 대신 경쟁상대의 캠프에 가져다주는 일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만약 이 일에 특정 언론사가 간여했다면, 특정 언론이 대통령 선거를 통해 자사의 이익을 도모하고 스스로 최후의 독재권력이 되려한 것임을 증명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동아와 조선일보 보도태도를 비판한 데 대해 경향신문의 한 편집국 간부는 “이번 노무현 후보의 발언 문제를 다루는 모습에서도 드러나지만, 이들 신문은 자사의 입장과 잣대에 집착하는 경향이 많다”며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동아·조선·중앙
애초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그리고 중앙일보의 ‘8·1 언론관련 발언’에 대한 보도태도는 ‘노무현 고문이 그런 발언을 했는가’에 집중돼 있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지난 5일자에 ‘8·1 언론관련 발언’ 기사를 1면 머릿기사로 비중 있게 보도하면서 진실 규명을 촉구했다. ‘8·1 발언’과 관련해 노무현 고문과 술자리를 함께 한 기자들이 소속 언론사 지면에 게재한 해명을 근거로 ‘동아 폐간 발언 사실’이라며 동아일보 관련 발언은 기정사실화하는 자세를 취했다.
이들은 또 노무현 고문의 ‘8·1 발언’ 관련 해명의 추이를 ‘말바꾸기’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8일자 사설에서 “따져야 할 것은 노무현씨의 일관성 없고 모호한 표현법”이라고 했고, 중앙일보도 “노무현 후보의 언론 관련 발언이 ‘치고 빠지기’ ‘교묘한 말바꾸기’라는 인상을 주고 있음은 매우 유감”이라고 질타했다.
3개 신문사는 자신들의 ‘8·1 언론관련 발언’ 보도는 “사실보도에 충실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동아일보 임채청 정치부장은 지난 10일자 기명칼럼에서 “노 후보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인제 후보의 주장과 그로 인한 파장은 주장의 타당성 여부와 관계없이 그자체가 중요한 정치적 팩트(사실)이므로, 이를 알리는 게 거짓 보도일 수 없다”면서 “동아일보는 또 의도적으로 얘기를 부풀리거나 없는 얘기를 보태거나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언론단체나 다른 언론의 ‘특정후보 죽이기’란 지적에 대해선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조선일보 편집국의 한 고위간부는 “후보들의 폭로 내용 자체를 안 쓸 수 없다. 그런 발언들을 보도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편파적인 보도다. 실제로 노무현 후보측이 얘기하는 것도 다 써줬다. 특히 언론사로서 ‘국유화’ ‘폐간’ 발언을 안 쓸 수 없는 문제다. 이인제 고문측의 문제제기나 이에 대해 부인하는 노후보측의 입장 모두를 보도하고 있는데 왜 편들기 문제를 제기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8일자 사설에서도 “이 일련의 사태는 결국 노씨와 그의 경쟁자 사이에서 일어난 것”이라며 “그것을 보도한 신문에 대해 이제와서 ‘너 때문이야’라고 돌린다는 것은 그래서 사안의 본질을 뒤집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정치부의 한 관계자는 “‘동아 폐간’ 얘기가 나온 만큼 당사자로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고 상응한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기사를 쓰는 데 있어선 충분히 노무현 고문측 입장을 반영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오히려 보도의 우선 순위를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게 문제라며 ‘일부 언론’의 보도태도를 비판했다.
중앙일보 김두우 정치부장은 지난 10일자 기명칼럼에서 “보도에는 우선 순위가 있다. 발언의 진위를 따지는 것은 최우선 과제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사실규명보다 ‘누가 이 후보에게 전달했느냐’는 문제를 부각했다. 기사와 사설, 심지어 만평에서도 그랬다. 그러다보니 벌써 ‘어느 신문은 누구 지지’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언론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김동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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