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통제로 '권력의 가면' 감추려하지 마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취재팀은 보도를 마무리하지 못했지만 어떤 후회도 없다. 역사를 기록할 의무를 저버렸다는 비판도 달게 받기로 했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고 시간은 진실의 편이라고 믿는다. 진실의 순간은 도둑같이 올 것이다.” 2014년 ‘정윤회 문건’을 보도했던 세계일보 박현준 기자가 지난해 3월 관훈저널에 기고한 글이다. 그의 ‘예언’대로 진실의 순간이 도둑처럼 찾아왔다. 정윤회가 아닌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박근혜 정부의 온갖 부정과 부패가 드러났고,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당했다.


2년 전, ‘국정농단’을 밝혀낼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취재팀의 펜을 꺾고 ‘역사를 기록할 의무를 저버리게’ 만든 건 정부의 언론탄압이었다.


청와대의 전방위적 언론통제는 지난 15일 열린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그 실체가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세계일보가 정윤회 문건을 보도할 당시 재직했던 조한규 전 사장은 “청와대의 요구로 해임됐다”며 청와대의 전방위적 회유와 압박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이 편집국장, 사회부장, 기자들을 고소하고 기자들이 30시간 이상 조사를 받던 상황에서 더 이상 보도를 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또 고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 비망록에 나온 대로 세계일보에 대한 세무조사, 압수수색, 정정보도, 명예훼손 고발 등의 ‘시나리오’가 실제 진행됐다고 밝혔다.


박근혜는 그동안 ‘아버지 시대’를 향수하는 듯 언론 통제를 시도해왔다. 정부에 비판적 보도를 한 언론에 대한 고소고발, 기자의 휴대폰 압수수색, 그리고 공영방송에 대한 ‘보도개입’ 등 거론하자면 셀 수 없다. 정부에 비판적 보도를 한 언론에 대한 고소고발이 겉으로 드러난 그나마 ‘절차적 정당성’을 위장한 탄압이었다면, 이번에는 언론사의 인사까지 부당하게 개입하고 보복적 성격의 세무조사까지 벌인 사실까지 드러난 것이다.


청와대의 언론의 손발을 묶고 재갈을 물리려는, 그리고 그럴 수 있다는 시대착오적 사고와 행태는 한 줌도 안 되는 ‘허수아비 권력’으로 전락한 뒤에도 계속됐다. 100만 촛불의 퇴진요구를 받던 지난달에도 SBS ‘그것이 알고 싶다-대통령의 시크릿’ 편 방영을 앞두고 허원제 청와대 정무수석이 SBS 고위경영진에 접촉을 시도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그리고 지금, 민주화가 이뤄진 이래 가장 노골적 언론통제와 탄압을 일삼았던 정권이 바로 그 언론에 의해 붕괴 직전에 처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시도는 한 두 번은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종국에는 성공할 수 없다. TV조선의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의 대기업 모금 보도, 비선실세 ‘최순실’의 이름을 처음으로 드러낸 한겨레 보도, 최순실이 개인 회사를 설립해 대기업 돈을 빼돌리려 한 정황을 밝힌 경향신문 보도, 그리고 국정농단의 실체를 마침내 드러낸 JTBC의 태블릿PC 보도 등 보수·진보 진영을 가리지 않는 수많은 언론의 보도로 진실이 고구마줄기처럼 드러났고, 마침내 추악한 정권은 부패한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진실의 순간은 도둑처럼 올 것이다.” 정부의 탄압에 펜을 꺾어야만 했던 기자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세계일보의 보도가 있었기에 비선실세의 실체가 조금이라도 민낯을 드러냈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언론의 노력이 쌓이고 쌓여 결국 권력의 가면을 벗겼다. 2016년은 언론에도 특별한 해다. 박근혜 정권에서 저널리즘의 위협을 받던 언론이 저널리즘의 가치와 힘을 스스로 증명한 해이기도 하다. 새로운 민주주의와 정치를 만들어야 하는 새해, 언론의 역할과 사명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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