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농단 청와대, 유구무언이어야 마땅하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분노가 솟는 나날이 한 달째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4일 JTBC의 특종 보도로 국민은 국정농단의 민낯을 마주했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력을, 자연인 최순실이라는 인물이 마음껏 주무른 정황이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이러려고 대한민국 국민이 됐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지만 국정농단의 진상은 철저히 규명돼야 하며, 그 길을 환히 밝혀야 하는 것이 오늘날 언론의 책무다. 그런데 그런 언론조차 농단의 대상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다.


TV조선이 입수해 보도한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비망록은 그 전말의 일단을 보여준다. 비망록에 따르면 지난 2014년 7월,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언론에 대해 “본때를 보여야 한다. 열성과 근성으로 발본색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최씨의 전 남편 정윤회씨를 비선실세로 지목한 언론들에 대한 진노를 표출하며 이같은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한술 더 떠 “비판 언론에는 고소·고발 등 철저하게 불이익을 주고, 호의적인 보도에는 금전적 지원을 하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외교·문화·산업·체육·교육을 가리지 않은 국정농단 릴레이에 언론농단까지 추가해야할 판이다.


비망록으로 일단이 드러났을 뿐, 청와대는 오랜 기간 언론을 포섭과 위협의 대상으로 삼고 ‘열성과 근성’을 발휘해왔다. 비망록 작성 전인 2014년 4~5월에도 청와대는 김기춘 실장과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실장, 안봉근 제2부속실장 명의로 시사저널과 일요신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비망록 작성 후엔 일본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 서울지국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하며 해외 언론에도 재갈을 물리려 했다. 법원이 그해 11월 무죄판결을 내렸으나 청와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언론농단의 고삐를 더 세게 쥔다.


TV조선에 따르면 그해 11월28일 김기춘 실장은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에 대해 소위 ‘세계일보 공격 방안’을 지시했다고 한다. 청와대가 언론사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실제로 이듬해 세계일보 대주주인 통일교 재단에 대한 세무조사가 실시됐다. 청와대의 일사불란한 움직임 덕에 한국은 국제언론감시단체인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한 2015년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6년만에 최하위인 60위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상식의 수준에 부합할진대, 청와대의 행보는 점입가경이다. 국정농단의 실상이 드러나는 상황에서도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언론브리핑에서 “대통령에 대한 근거없는 의혹제기가 도를 넘고 있다. 자중을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11일과 13~14일, 16일 브리핑에서도 정 대변인은 언론에 소위 ‘자중’을 요구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뿐만 아니다. 청와대 홈페이지(www.president.go.kr)에 접속하면 ‘오보·괴담 바로잡기! 이것이 팩트입니다’라는 코너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오보와 괴담이 난무하는 시대, 혼란을 겪고 계신 국민여러분께 팩트를 바탕으로 진실을 알려드립니다”라는 친절한 부연설명도 적혀 있다. 대한민국 사상 유례없는 국정공백 사태를 자초한 청와대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판이다. 몰염치에도 정도가 있다.


청와대가 지금 새겨야 할 사자성어가 있으니, 유구무언이다. 일말의 양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지금이라도 입을 다물고 겸허한 자세를 보일 것을 요구한다. 그것이 청와대가 언론과 국민에 마지막으로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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