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 뒷짐 진 언론 자성하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워터게이트로 닉슨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사임했다. 닉슨 최측근들이 도청공작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며 진상을 은폐한 닉슨은 결국 불명예 퇴진했다. 권력 비리를 폭로한 워싱턴포스트 보도는 ‘언론이 권력의 감시자’란 저널리즘의 본질을 각인시킨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정국이 뜨겁다. TV조선이 미르재단 설립에 청와대가 개입한 의혹을 보도하며 물꼬를 튼 지 3개월만이다. 한겨레가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최순실씨가 깊숙이 개입한 의혹을 한 달 넘게 폭로하며 사건이 커졌고, JTBC가 ‘최순실씨 대통령 연설문 수정’ 등 국정개입 사실을 터트리며 일파만파로 번졌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들은 의혹을 해소 못한 ‘땜질사과’라고 비판했다. 전국에서 “이게 나라냐”며 시국선언을 하고, 국정파탄의 책임자인 박 대통령을 향해 “하야하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최순실씨 민낯을 대면하고 있는 오늘 우리는 언론계의 부끄러운 민낯도 마주보고 있다. 최순실 의혹을 끈질기게 추적한 언론이 있는 반면 뒷짐 진 언론이 다수였다. 공영방송 KBS를 비롯해 MBC, SBS 지상파 3사가 대표적이다. 권력형 비리 의혹에도 최소한의 팩트 확인도 없이 정치공세로 치부했다. 청와대와 대통령 심기에만 촉수를 세울 뿐, 권력의 감시자 역할은 내동댕이쳤다. 잇따른 특종 보도를 부랴부랴 뒤쫓아 가는 내부 구성원들은 자괴감에 빠져 있다.


KBS 새노조는 성명을 통해 “종편 뉴스를 긴장하며 기다리고, 베끼고, 쫓아가기를 서슴지 않는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자존심도 버렸다”며 비참한 현실을 토로했다. 노조는 ‘최순실 비리 의혹 TF’를 구성해 심층취재에 나설 것을 요구했는데도 보도국 간부가 특정 정치세력의 정략적 공세라며 묵살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SBS 노조도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사회적 책무가 아닌 청와대 눈치보기 보도를 한 책임자들은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대부분의 신문사들도 ‘최순실 게이트’ 취재에 소홀하다 뒤늦게 특별취재팀을 꾸렸지만 내부 기자들은 부글거리고 있다. 의혹이 제기되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사실이 맞다면 끈질지게 추적보도를 해야 한다고 가르쳤던 선배들이 이제는 후배들의 취재 의지조차 꺾는다며 반발했다. 다른 언론의 특종을 넋 놓고 지켜보며 외면으로 일관한 지휘부에 실망을 넘어 절망을 드러냈다.


권력형 비리 보도는 취재가 어려운 만큼 특종의 폭발력이 크다. 반대로 낙종을 한 언론은 내상이 심하다. 열심히 뒤쫓아도 예상 못한 곳에서 새로운 특종이 터져 나오며 정신 못 차리게 만든다. 편집국과 보도국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권력자의 표정을 살피며 힘을 빼는 지휘부가 있다면 결과는 너무 뻔하지 않은가.


그나마 다행인 건 ‘최순실 게이트’가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며 모든 언론이 뛰어들어 보도경쟁이 불붙은 점이다. 외적 환경에 의한 변화지만 눈치 볼 필요가 없어졌으니 새로운 뉴스들이 생산될 토양이 넓어졌다. 지금까지 드러난 최순실 의혹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수 있다. 본격적인 취재는 이제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국민들도 ‘이제야 뉴스가 볼 만하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 자고 나면 제일 먼저 뉴스를 찾고,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는 최순실 관련 키워드가 지배하고 있다.


특종 뒤엔 워싱턴포스트 간부들의 권력과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저널리즘 정신이 버티고 있었다. ‘최순실 게이트’를 마주한 우리 언론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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