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벼랑 끝 충돌이라는 ‘정치 드라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우병우 민정수석의 부패 혐의가 조선에서 잇따라 단독보도되자, 송희영 조선일보 전 주필의 부패 혐의가 보복성으로 폭로됐다는 세간의 음모론은 제쳐두자. 청와대의 고집스런 불통인사는 차기 대선에서 표심이 심판하면 될 일이고, 송 전 주필의 혐의는 검찰 수사를 통해 확인될 것이다. 우리가 연대하고자 하는 것은 저널리즘을 지키기 위해 사내 권력에 맞서 일어난 조선일보 기자들이다.
지난 2일자 조선일보 노동조합 노보는 이들의 참담한 심경을 담고 있다. 언론사를 대표하는 존경하는 선배조차 자신들이 날카롭게 비판해왔던 바로 그 구태스런 기득권이란 혐의 앞에서 언론인으로서의 자존감은 붕괴했다. “경영진과 선배 기자들은 ‘민심’에서 멀어진지 오래”이며 “기득권 세력의 핵심으로서 오랜 세월 경쟁자 없이 군림해오면서 쌓인 무서운 ‘관성’이 오늘의 사태를 낳았다”는 한 기자의 자기인식은 통렬하다. 신문 1면에 사과문을 싣고, 방상훈 사장까지 ‘도덕’을 외치며 나섰지만 조선일보를 바라보는 여론은 온정적이지 않다. 좋은 저널리즘으로 독자에게 되돌려야 할 신뢰를 권력의 밑천으로 남용해 제호를 흙탕물에 담근 건 조선일보 자신이었다. 특정 정치파벌의 이익을 대변하며 싸움에서 칼 휘두르듯 말과 글을 정치도구로 삼아온 긴 세월동안 조선이 어떤 자정과 규율을 위해 노력했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진상규명을 위한 독립적인 조사기구 도입과 책임 규명을 요구하는 기자들의 이례적인 용기에 힘을 보태고자 한다. 위기는 개혁의 기회가 되어야만 한다. 국내 최대부수 종합일간지의 자기혁신은 한국 사회에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또한 국가 권력에 의한 언론의 자유 침해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청와대 수석의 부동산 의혹을 보도했다고 조선일보 이명진 기자의 휴대전화를 검찰이 압수수색한 것은 명백한 보복이다. 조선일보가 사설을 통해 주장한 것처럼 “권력이 싫어하는 보도를 한다고 취재기자를 압수수색한 것은 언론을 적대시했던 좌파 정권에서도 없던 일이다. 이 사건은 권력과 언론의 관계에서 중대한 악례로 두고두고 남을 것이다.”(2016년 8월31일자) 조선일보가 그간 언론의 자유 침해에 해당하는 다른 사례에 대해서는 편파적이지 않았냐는 일각의 지적은 일단 접어두자. 원칙은 원칙이다. 사안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취재기자의 저널리즘은 헌법에 따라 보호되어야만 한다. 권력자가 원한대서 아무개의 휴대전화를 마구잡이로 털 수는 없는 것이다. 조선일보 기자의 휴대전화에 압수수색 영장을 디밀었다면 다음 차례는 어느 언론사의 어떤 기자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또한 조선의 사례는 언론사의 사내 민주주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노동조합 조합원 다수는 이번 파문의 원인으로 ‘경직된 조직문화, 내부 비판과 성찰 시스템 부족’ 등을 꼽았다. 한 조합원은 “솔직히 우리 회사에서 윗사람 뜻 거스르는 말을 하는 사람 드물지 않느냐”며 이런 일방통행식 조직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비슷한 사건이 재발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일부 이슈에 대해 경영진과 데스크층의 사안을 보는 시각, 보도 방향 등이 일반 평기자들 생각들과 너무 달라 놀랐던 적이 많다”는 의견도 있었다. 과연 이것이 조선일보만의 문제이겠는가.
언론사는 오로지 사주나 대주주의 것이 아니다. 언론은 현재의 민주주의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어떤 사회를 만들지 고민하는 이들의 것이다. 조선일보 이번 노보의 헤드라인이 말하는 대로 ‘이대로 묻어두면 미래는 없다’. 기자들의 건투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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