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통신사가 독자의 빗발치는 항의 끝에 온라인 기사를 사흘 만에 삭제했다. 제목은 ‘소라넷은 어떻게 17년을 살아남았나’. 개인의 사생활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몰래카메라·리벤지 포르노 유포, 강간 조장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국내 최대 음란사이트 소라넷이 경찰 수사로 서버가 폐쇄된 사안에 대해 이 사이트의 ‘운영자’로 1인칭 시점에서 ‘스토리텔링’을 했다.
이 사건에 대한 누리꾼의 뼈아픈 지적들을 그대로 옮겨본다. “연합의 소라넷 기사를 ‘언론의 범죄자 감정 이입의 정점’이라고 생각하는데, 기본적으로 기자들은 피해자의 입장에 서기보다는 피해자, 주로 여성을 부각시키면서 이미 피해를 당했고, 심지어 사망한 강력 사건 피해자를 ‘기사 조회수의 먹잇감’으로 본다.” “17년간 끔찍한 성범죄의 온상이었던 곳이 국민들의 열렬한 관심과 경찰의 오랜 노력으로 폐쇄됐는데 거기에 대한 입장이 ‘안 없어질걸?’이에요?”
이 사례뿐만이 아니다. 각종 범죄 보도에 있어서 적지 않은 언론이 피해자의 인권과 인격은 아랑곳없이 가해자의 관점에서 성적인 상상력을 ‘관음적’으로 부채질한다. 지난 3월에는 오피스텔 성매매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는 명목 하에 성매수자의 관점에서 연락 방법부터 가격까지 친절하게 ‘가이드’를 제공한 사례가 있었다. ㅎ닷컴은 지난 20일 연예인 커플의 성관계 사진이 휴대폰에서 유출됐다는 일부 누리꾼 주장을 여과없이 ‘단독’이라고 소개하면서 모자이크 처리한 사진을 실었다. 독자의 궁금증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기사화했다. 한 언론에서 지적한 대로 이같은 보도는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 1항은 카메라 등을 이용해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해 촬영하거나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언론이 “애인 사이였다”거나 “꽃뱀이었다”는 가해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쓰기하는 탓에 해명할 기회조차 없는 망자의 명예가 훼손되기도 한다. 또는 제목 ‘글자수’를 줄인다는 편리한 이유로 ‘OO녀’라는 표현이 남발된다. 전과자에게 납치돼 살해된 뒤 트렁크에서 불에 탄 시신으로 발견된 이는 ‘트렁크녀’로 불렸고, 의료진을 믿고 검사를 받았다가 피해를 입은 이들은 ‘대장내시경녀’로 불렸다. 그런데 범행을 저지른 여성에게도 똑같이 ‘OO녀’를 남발하다 보니 ‘염산녀’는 염산 테러 피해를 당한 여성인지, 가해자인지 분간하기 힘든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진다. 기사에서 ‘남성’이라는 사실은 굳이 부각되지 않는데, ‘여성’이라는 사실은 기사의 맥락과 본질을 흐릴 정도로 부각되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남성 중심적인 가치관에서 양성평등적인 가치관으로 느린 이행기에 놓인 한국 언론이 기사의 주목도를 높이는 방편으로 온라인에서 선정성 경쟁을 하면서 더욱 심해지고 있다.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서 더 많은 페이지뷰를 올리기 위해 피해자의 인권쯤은 간단하게 무시하는 것이다. 일간베스트를 포함한 문제적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나 거론될 법한 ‘여성혐오’를 언론이 유포하고, 조장하고, 부추기고 있다.
자문해본다. ‘페이지뷰’라는 티끌만한 이익을 얻기 위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절반인 여성을 대상화하고, 비하하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인가. 양성이 평등하고 건강한 ‘목초지’를 가꾸기 위해 감시와 견제의 역할을 다해야 할 언론이 사적인 이득을 취하려고 목초지를 훼손하는 것은 바른 일인가. 인권과 공익을 고민해야 할 언론이 포르노그래피같은 병적인 상상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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