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둥 마는 둥 진행되던 국정감사에 이목을 집중시킨 벼락스타가 탄생했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고영주 이사장. 국정감사장에서 그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공산주의자임을 확신한다”고 반복해 말했다. 또 “노무현은 변형된 공산주의자” “문재인 대표에게 투표한 국민은 이적행위”라고도 했다. “사법부와 검찰에 김일성 장학생이 있다” “국사학자 90%가 좌경화” 등의 황당한 주장을 마음껏 펼쳤다.
방문진 이사장의 발언 파문이 확산되는 가운데 KBS 이사회의 조우석 이사도 토론회에서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발언했다.
MBC와 KBS 두 공영방송의 이사장과 이사가 나란히 제1야당 대표를 겨냥해 ‘빨갱이’ 도발에 나선 것이다. 두 공영방송은 막대한 국민 부담과 법적·제도적 특혜의 토대 위에 성장했다. KBS는 십여 년간 3조원이 넘는 수신료를 사실상 독점했다. MBC는 유일하게 지상파 방송사 복수소유가 허용돼 수십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우리 국민들이 언론사에 지원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의 대부분을 두 공영방송에 몰아준 것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돼 공정한 보도를 하라는 요구 때문이다. 하지만 고영주 이사장과 조우석 이사는 총선을 앞두고 중립을 지키기는커녕 야권에 근거 없는 색깔론을 제기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사장과 이사가 이 모양이라면 MBC와 KBS의 뉴스 보도 또한 공정성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MBC는 이 와중에 기자, PD 등 방송 직종을 폐지하겠다고 고영주 이사장에게 보고했다. MBC엔 기자가 없고, 사원과 부장만 남게 되는 것이다.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이사장의 주장에 동의하는 기자만 남고 동의하지 않으면 총무나 영업직 등 다른 직종으로 보내 버릴 수도 있게 된다. 조우석 이사는 조만간 새로운 KBS 사장을 선출하게 된다. 그에겐 “야당 대표는 빨갱이” 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지가 KBS 사장의 중요한 잣대가 될 수도 있다.
군사정권 시절에도 볼 수 없던 방송계의 극단적 퇴행이 벌어지게 된 데는 임명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다. 고영주 이사장은 방송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이 수년간 잦은 논란을 일으켰다. 그에겐 색깔론이 경쟁력이었다. 방송 문화 진흥과는 아무 관련 없어도 야권과 노조, 시민사회를 향한 강력한 색깔론이 청와대의 이목을 끌어 이사장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청와대는 그를 왜 방문진 이사장에 임명하게 됐는지 밝히든지 해임해야 한다.
국정감사장에서 대놓고 ‘빨갱이’로 몰린 야당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1400만명 국민의 신성한 주권행사가 ‘이적행위’로 조롱당했지만 SNS에 항의글을 올리거나 국감장 퇴장으로 맞섰을 뿐이다. 야당의 존재이유는 국민을 대신해서 여당을 견제하고 싸우는 것이다. 국민의 권리를 위해 대신 싸우는 것은 고사하고, 국정감사장에서 야당 대표가 능멸을 당하는데도 무기력하게 퇴장하는 것은 정치를 포기하는 셈이다. 자신도 지키지 못하면서 누구를 지킨단 말인가.
공영방송 이사들의 색깔론 공세는 ‘방송의 국정화’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국정교과서 논란과 맥을 같이한다. 청소년에겐 국정교과서로, 시민들에겐 ‘국정방송’을 통해 정부 여권의 일방적인 입장을 강요할 가능성이 있다.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방문진법과 KBS법 등 방송관계법의 전반적인 개선에 나서야 한다. 권력이 비정상적인 인물을 내려 보내 방송을 장악하는 통로를 차단하고,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방송사를 만들도록 근본적인 법적·제도적 개선에 나서야 한다. 물의를 빚은 이사진을 해임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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