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젠 임기응변에 그칠게 아니라 그동안 방기해온 근본문제를 다룰 때가 됐다. 바로 복지와 세금 문제다. 일부 언론은 대통령이 ‘증세없는 복지’라는 실현 불가능한 공약에 더이상 연연해하지 말고, 증세와 복지축소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예 ‘무상복지’의 포기나, ‘보편적 복지’에서 ‘선별적 복지’로의 전환을 주문하는 언론도 있다.
하지만 ‘복지 축소’는 시대적 흐름에 반한다. 한국의 복지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못미치는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선별적 복지’가 ‘복지 축소’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무상복지’라는 용어도 말장난에 불과하다. ‘유상복지’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별적 복지도 추가재정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증세는 피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세 부담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적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문제는 증세 방법이다. 여러 세목 중에서 무엇을, 얼마나 올릴 것인가가 관건이다. 조세정의와 국가경제 등 여러 요인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그동안 증세 논의가 많았지만 제대로 된 논의는 너무 적었다. 일례로 야당은 정부의 부자감세를 문제 삼으며 법인세 증세를 주장한다. 반면 정부여당은 대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내세워 반대한다. 한국의 법인세율 22%는 OECD의 평균인 23.4%에 비해 낮아, 인상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OECD가 지난 2000년 28%였던 법인세율을 그동안 지속적으로 내려온 것도 사실이다. 법인세 인상과 인하 요인이 교차해 섣부른 판단은 위험하다. 증세 해법은 보다 종합적 접근을 요구한다. 소득세와 부가세 등 다른 세금까지 포괄해 검토해야 한다.
증세가 불가피하더라도 복지체계에 대한 재검토도 필요하다. 중산층도 포괄하는 보편적 복지의 원칙과 복지확대의 기조를 살리면서도, 복지 지출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증세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이 큰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같은 세금을 쓰더라도 복지의 총합이 더 커지도록 하고, 더 급한 곳에 우선적으로 복지의 손길이 미치도록 해야 한다. 복지가 자칫 ‘도덕적 해이’로 이어지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도 있다.
독일은 좋은 참고사례다. 독일은 2000년대 초만 해도 ‘유럽의 병자’로 불릴 정도로 경제가 안좋았다. 이때 슈뢰더 총리는 ‘비전 2010’이라는 개혁안을 내놨다. 그 중 하나는 실업자가 재취업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일정기간 이후 실업수당을 줄이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장기실업자가 국가에만 의존하는 대신 재취업에 적극 나서도록 동기부여를 했다.
우리도 비슷한 고민이 요구된다. 노인, 어린 자녀를 둔 가정, 학생 급식 등에 실제 소득 규모와 상관없이 똑같이 지원하는 것에 대한 현실적 타당성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복지 서비스를 설계할 때 일정 비율의 본인 부담을 곁들여 실제 필요하지도 않은데 과도한 복지수요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 것도 필요하다.
결국 이 모든 문제들은 최종적으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언론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론이 지금까지처럼 이분법적 진영논리에 갇혀있으면 희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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