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 고통 앞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5일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비행편 안에서 남긴 말이다. 방한기간 동안 교황의 세월호 참사 유족에 대한 위로, 그리고 자본주의와 종교계에 대해 교황이 낸 비판의 목소리를 두고 우리 사회는 진보-보수 진영에 따라 미묘한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던 참이었다. 그의 가슴에 달린 작은 노란 배지에 큰 부담을 느낀 누군가가 전달한 소위 정치적 중립에 대한 제안 혹은 요구를 그는 ‘인간 우선’의 이유로 거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한 종교의 국제 수장의 일회성 방문 이벤트로 끝내기엔 그가 한국 사회에 던진 메시지가 간단치 않다. 우선, 세월호 유족에 대한 진심에서 우러난 위로와 배려는 시일이 지날수록 그 아픔에 무뎌져 간 우리를 부끄럽게 할 정도였다. 교황의 행보는 어쩌면 아픔을 위로하는 성직자로서의 본분을 다한 것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사고가 터진 지 넉 달이 넘도록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첫 단추가 되는 특별법 제정을 정치적 이해득실 때문에 미뤄온 한국 정치지도자들의 진정성 없는 위로에 지친 유가족과 국민들에게 교황의 진심은 깊은 위안이 되었다.
또한 자본주의와 교계에 대한 교황의 거침없는 비판은 강렬한 울림을 남겼다. 그는 “(현대 사회는) 막대한 부 옆에서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라고 지적하며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그리고 무한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라”고 행동을 촉구했다. 무한 이윤 추구를 위해 굴러가는 사회구조 하에서 약자들이 고통받는 현실을 묵과하지 말라는 주문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한국 종교계의 세속적 행태에 염증을 느끼는 이들에게 통렬한 일갈로 다가왔다. 특히 겸손, 검소, 소탈의 낮은 행보는 그의 메시지에 묵직함을 더했다.
정치적인 불편함을 느낀 일부에서는 “자신의 비즈니스(교세 확장)를 위해 방한한 교황의 메시지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지 말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하려 했다. 또 한편에서는 교황의 출신국가를 들먹이며 정실 자본주의에 대한 잘못된 경험 때문에 교황이 자본주의에 대해 왜곡된 생각을 갖고 있다며 깎아내리는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종교인으로서 당연한 그의 언행이 2014년 한국사회에 이토록 큰 울림을 만들어 내는 이유는 우리 안에 있다. 국가적 재난 상황을 수습하지 못하는 정치적 진공상태, 부정·부패·일탈 행위를 일삼는 국가권력과 지도층에 대한 지독한 불신, 심화 되는 양극화에 대한 사회적인 무책임 등으로 인한 우리 사회의 불안정함이 국민들로 하여금 그에게서 희망을 갈구하게 만들었다. 언론 역시 사회적 불안 속의 국민들에게 기댈 곳을 마련해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이례적인 열광의 근저에는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명량 신드롬과 마찬가지로 내부의 지도자들이 채워주지 못한 커다란 결핍 그리고 과연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짙게 깔려 있다.
누가 교황 가슴의 노란 배지를 거두라고 요청했건 간에 그의 마지막 일침은 분열된 우리 사회를 부끄럽게 만든 이번 방한의 마지막 메시지였다. 정치와 이윤, 그 모든 것 앞에 인간의 가치를 두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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