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출신’ 총리후보였던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24일 결국 사퇴했다. 일제 강점기와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반민족적인 역사관이 드러나 총리후보로 지명된 직후부터 큰 논란을 일으켰지만 출근투쟁을 하며 버티다 2주 만에 물러난 것이다. 사퇴 기자회견에서도 자신의 잘못에 대해 조금도 사과하지 않고 언론 탓만 했다. 유력 중앙일간지에서 주필까지 한 능력 있는 기자가 어쩌다 국적을 의심하게 하는 역사관을 갖게 된 것일까.
총리 거취 문제에 관심이 쏠려 있던 와중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3기가 출범했다. 문창극 후보자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들끓던 지난 17일 박근혜 대통령 대선캠프 출신이자 대표적 뉴라이트 인사가 방심위원장에 선출됐다. 일제와 독재를 미화하는 데 앞장섰던 극우 성향의 박효종 서울대 명예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문창극 후보자의 친일 성향 발언이 파란을 일으키던 중에 친일 이데올로기를 만든 학자가 방심위원장이 되는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박효종 위원장은 뉴라이트 교과서 포럼 회장을 맡으며 오랫동안 이른바 대안 역사교과서 집필을 주도했다. 그동안의 언론인터뷰를 보면 박 위원장은 “일제 강점기가 근대 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하는 시기”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친일청산은 외눈박이 역사의식”이라고 비난까지 했다고 한다.
박 위원장은 또 “친일파도 일제의 피해자” “친일을 왜 했는지는 중요치 않다”며 친일파 옹호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한다. 그는 8월15일을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로 바꾸자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박 위원장은 특히 자신이 집필을 주도한 이른바 대안교과서에서 위안부 문제를 일본 극우파의 논리대로 기술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결국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박효종 위원장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른 학생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제자는 총리에서 사퇴하고 스승은 방심위원장이 된 셈이다. 이런 가운데 방심위가 “식민 지배는 하나님 뜻” 발언이 담긴 문 후보자의 동영상을 보도한 KBS‘뉴스9’을 심의한다고 한다. 박효종 위원장이 평소 자신의 주장과 비슷한 내용의 문창극씨 발언을 비판한 기사를 객관적으로 심의할 것을 기대하기란 무리인 것 같다. 더욱이 문창극씨는 사퇴 기자회견에서 “발언 몇 구절을 따내 그것만 보도하면 이는 문자적인 사실 보도일 뿐 진실보도가 아니”라며 방심위를 압박하기까지 했다.
이미 ‘정치심의’ ‘표적심의’라는 비난을 받아온 방심위가 내린 징계 처분이 법원에서 계속 부당함이 드러나고 있다. 방심위가 KBS의 ‘추적 60분, 의문의 천안함’편에 내린 ‘경고’ 처분에 대해 법원이 부당하다고 판결했고, CBS ‘김미화의 여러분’에 내린 ‘주의’ 처분도 역시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방심위의 마구잡이 징계로 CBS ‘김현정의 뉴스쇼’ JTBC ‘뉴스9’ 등 많은 시사 보도 프로그램이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념이 편향된 박효종 위원장이 시사 보도프로그램의 객관적인 심의를 할 수 있을까. 박 위원장은 문창극씨 사퇴와 함께 스스로 방심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자신의 대선 캠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질과 전문성이 없는 친일학자를 방심위원장에 위촉한 것을 사과하고, 공정한 심의를 할 수 있는 인물을 천거하길 바란다. 일제 강점기가 끝난 지 70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친일역사관을 가진 인물이 활개 치는 건 국제 망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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