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비극과 박 대통령의 패션외교
[스페셜리스트 | 외교·통일] 김동진 세계일보 기자·외교안보부
|
|
|
|
|
▲ 김동진 세계일보 기자 |
|
|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했다.
지난 25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자리에 등장한 박근혜 대통령의 튀는 ‘드레스코드’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참석자 모두가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를 애도하려는 듯 검은색 정장을 입었는데 유독 박 대통령만 화사한 파란색 정장을 걸치고 있었다. 상주(喪主)와 조문객이 바뀐 것 같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실제로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30초간의 묵념을 제안한 것도 박 대통령이 아닌 오바마 대통령 측이었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방한 기간에 세월호 참사로 슬픔에 잠긴 한국 국민을 위로하는 일종의 ‘조문외교’를 펼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도 검은색 드레스와 노란색 리본 착용까지는 아니더라도 옷 색상에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해외순방이나 정상회담때 ‘패션외교’로 적지 않은 재미를 봤다. 옷 한 벌도 즉흥적으로 선택하지 않고 상대국 정상과 그 국민들에게 감성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심사숙고한 덕분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월 인도 방문 때 프라나브 무케르지 인도 대통령이 주최한 만찬에서 녹색 치마와 노란색 저고리를 입어 눈길을 끌었다. 인도의 국기 색깔을 연상시키는 색 배합이었다. 앞서 지난해 9월 러시아 방문 때는 러시아 국기의 색깔인 흰색과 파란색, 빨간색 재킷을 행사에 따라 바꿔가며 입었고, 지난해 6월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황금색 계통의 의상을 입어 화제를 낳았다.
만모한 싱 인도 총리의 부인은 박 대통령의 의상 선택에 대해 “인도 분위기(Indian touch)가 느껴진다”고 호감을 표시했다. 러시아·중국 언론들도 박 대통령의 패션에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외교가에서는 패션을 통한 공공외교의 성공이라는 평가도 들려왔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의상 선택도 박 대통령 특유의 패션외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미 지난해 5월 첫 방미 정상회담 때 블루 코드 의상을 입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속한 미국 민주당의 상징색인 파란색을 겨냥한 의상 선택이었다.
이번에도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러 먼 길을 와준 오바마 대통령에게 강한 친근감을 표시하면서 한·미 동맹을 더욱 굳건히 발전시키려는 뜻에서 같은 톤의 의상을 고른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오바마 대통령 일행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과 우리 국민이 그 화려한 패션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선 고려가 부족했던 것 같다. 굳이 세월호 참사가 아니더라도 긴박하게 돌아가는 최근의 동북아 정세만 봐도 기획성 패션외교는 사치스런 이야기다.
지난 2주간 우리 국민들은 세월호의 비극을 생생히 지켜봤다. 세월호는 ‘맹수처럼 물살이 거칠고 빠르다’는 맹골수도(孟骨水道)에서 침몰했다. 밀물과 썰물이 남해에서 서해로, 서해에서 남해로 길이 약 6km, 폭 4.5km의 좁은 수도를 따라 오가면서 최대 6노트(약 11km/h)까지 빨라지는 지역이다.
이런 곳에서 일본에서 들여온 낡은 여객선을 무리하게 증축하고, 과적 화물을 제대로 고박(동여매 움지이지 않게 고정함)도 하지 않은 채 항해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결국 배의 무게중심이 높아져 복원력이 상실되면서 배가 뒤집혔다. 그 과정에서 선장은 어린 승객들을 버리고 저 혼자 살려고 도망치기에 바빴다.
외교 현장을 바다에 비교한다면 세월호의 비극은 대한민국號에도 언제든 닥칠 수 있다. 지금 동북아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파워게임이 전개되고 있다. 미·중 양국의 거대한 힘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길항하면서 거대한 급류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호가 침몰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능한 리더십과 낡은 외교 패러다임 그리고 국론 분열 등으로 배의 무게중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선장(대통령)부터 승객(국민)들까지 눈을 부릅뜨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다.
김동진 세계일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