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장]청와대의 '위험한 발상'

한겨레신문 성한용 기자가 쓴 책 ‘DJ는 왜 지역갈등 해소에 실패했는가’가 밝힌 언론사 세무조사 ‘사전기획설’이 언론계 안팎을 뒤흔들고 있다. 그가 쓴 동아·조선·중앙 등 이른바 빅3의 반응에 대한 별도의 반박글조차 정권 차원의 세무조사 사전 준비작업이 진행중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한 마디로 대통령의 공식 보좌진이 법의 힘을 빌려 빅3 등을 ‘손보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를 위해 국세청의 인사 질서를 무시하고 호남 출신 간부들로 ‘전위대’를 편성했다고 이 정권의 실세로 통하는 인사가 밝혔다고 한다.

언론 개혁의 필요성을 앞장서 외치는 한편 정부의 언론통제 의도를 경계해 온 우리로서는 언론을 손보려 했다는 이 정권의 위험한 발상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 개혁을 위해 세무조사를 실시한 게 아니라 특정 언론사들을 혼내기 위해 세무조사를 동원했다니. 법이 부여한 권한을 알맞게 쓰는 게 아니라 최대한 활용하겠다고 했다니,이들 특정 언론사를 노리고 ‘보복’의 칼을 갈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다.

정권이 언론에 등을 돌릴 때 불행해 지는 건 두 당사자만이 아니다. 당장 언론사 세무조사 정국에서 정치와 언론에 식상한 국민들은 극도의 정치·언론 혐오증을 보였다. 언론이 견제의 대상일지언정 어떻게 결별의 대상인가? 국민으로부터 통치권을 위임받은 권력집단이 어떻게 “더 잃을 게 없다”는 망발을 하는가? 지금 손아귀에 쥐고 있는 듯한 권력도 내일이면 회수할 수 있는 것이 국민이다. 이 정권의 오만의 끝은 대체 어디인가?

이제 청와대가 입을 열 차례다. 청와대는 “책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식으로 비켜갈 게 아니라 무엇이 사실인지 밝혀야 한다.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문제의 발언을 한 사람들은 가려내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참에 말 많은 비서실을 전면 쇄신할 것을 우리는 강력히 요구한다.

성기자의 주장대로 언론사 손보기와 ‘언론 길들이기’는 개념상으로는 다를지도 모른다. 그 경계는 그러나 현실에서는 긋기 어려울 때가 많다. 설사 정권쪽에 길들이기의 의도가 없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독립적이지 못한 우리 언론으로서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사태는 세무조사를 둘러싼 개혁·탄압 시비에서 벗어나 비로소 편집권 독립,정간법 개정 등 실질적인 문제로 옮겨붙고 있는 언론 개혁의 불씨가 사그러드는것이다.이번 파문의 가장 큰 피해자가 언론 개혁이 되는 파국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정권 차원의 언론 손보기에 질려 행여 언론 개혁이나 언론사 세무조사라고 하면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사회가 돼서는 정말 안 된다. 그래서 좋아할 사람이 누군가?

언론 개혁은 우리 시대의 과제요 우리가 반드시 풀어야 할 화두이다. 당연히 이 정권의 전유물이 아니다. 언론사 투명경영에 대한 시장의 기대,공정하고 책임 있는 보도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자칫 이 정권의 악수로 무산되지 않도록 힘과 지혜를 모을 때다.

지금도, 앞으로도 언론 개혁의 주체는 우리 기자들이다. 우리의 주장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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