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검증과 어린이 인권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이 온 나라를 흔들고 있다. 파장을 가늠하기 쉽지 않은 진실을 놓고 핵심 권력기관의 수장과 거대 신문이 일전을 벌이는 광경은 보기 드문 일이다.

채 총장은 24일 법원에 조선일보를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접수하면서 조선일보의 혼외자식 보도를 다시 한번 전면 부인했다. 이에 조선일보도 유전자 검사 등 진위 규명이 늦어질 경우 유전자 감정을 위한 증거보전 신청 등 관련 법절차에 따라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지만 진실은 법정에서 드러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제기되고 있는 채 총장 문제에 대한 국가기관의 개입 의혹도 시민단체의 수사 의뢰가 잇따르고, 정기국회의 쟁점으로까지 부상하고 있어 사실 여부가 곧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일단 고위 공직자의 사생활 역시 언론의 검증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혼외자 의혹이 만약 사실이라면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검찰의 총수로서 도덕적 흠결이 작다고 할 수 없다. 게다가 이를 공식적 입장을 통해 부인했다면 책임은 더 무거워진다.

하지만 언론은 공직자 검증이라는 본연의 기능과 인권 보호의 가치가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두 가지 대의가 충돌한다고 해도 어떤 것을 희생시킬 수 있는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어린이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가 그것이다.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정한 인권보도준칙 실천 매뉴얼에는 ‘어린이와 인터뷰하기 전에 부모나 법적인 보호자의 동의를 얻을 필요가 있다’고 나와있다. 매뉴얼은 ‘어린이는 자신의 의사를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어렵고 다루는 주제가 민감할수록 자신의 의사와 다른 결과에 이를 수 있으므로 반드시 부모와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16조는 ‘어떠한 아동도 사생활과 가족에 대해 자의적, 위법적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행 아동복지법 17조도 ‘아동의 정신적 발달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의혹 보도를 뒷받침하는 과정에서 혼외아들로 지목된 어린이의 주변과 친구들을 인터뷰해 기사화하고, 나이와 거주지, 다녔던 학교 등 사실상 신상에 대한 단서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자칫 침해될 수 있는 어린이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창작물’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해당 어린이의 편지글 형식으로 쓴 동아일보 칼럼도 마찬가지다. 논란의 중심에 선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 의혹을 색다르게 풍자해보겠다는 생각이 앞섰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약자이자 또 다른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이 어린이에게 미칠 악영향을 유념하는 데는 무감각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언론이 고위 공직자를 검증하고 비판하는 이유는 거대권력에 대한 감시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다. 보편적 가치인 인권 수호도 별개 문제가 아니다. 언론이 권력자를 견제하는 이유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며, 민주주의의 중심에는 인권이 있다. 더욱이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갖고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국민들은 사실에 기반하면서도 강자에게 단호하고 약자에게 따뜻한 언론을 원한다. 최근의 보도들은 권력 감시와 인권 수호라는 동전의 양면에 대한 언론의 고뇌가 절실하다는 큰 숙제를 남겼다.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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