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사건 보도는 우선 검·경, 국정원 등 수사기관의 수사결과 발표로 최초 보도된다. 하지만 공소 제기와 재판을 거치면서 애초 혐의 사실이 전적으로 인정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 최근 예로 꼽힌다.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했던 유모씨는 탈북자들의 정보를 북한으로 몰래 빼돌린 혐의(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기소됐지만 지난달 1심에서 국가보안법상 간첩·특수잠입·탈출·회합·통신 등의 위반 혐의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다만 여권법과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집행유예 2년, 추징금 약 2565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사건 초기 언론들은 국정원의 발표에 따라 유모씨를 간첩으로 단정했다. ‘탈북자 생명이 걸린 신상 정보 엄격히 관리해야’(조선일보) ‘간첩에게 탈북자 지원업무 맡겼다니’(중앙일보) ‘위장 탈북 간첩에 농락당한 책임 누가 질 건가’(동아일보) ‘공직에 파고든 탈북자 간첩, 안보 구멍 더 없나’(서울신문) 당시 주요 일간지들의 사설 제목이다.
이른바 ‘GPS 간첩 사건’도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재판 결과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북한 대남 공작기구의 지령을 받고 첨단 군사장비 관련 정보를 탐지·수집하는 간첩활동을 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기소됐던 김모씨와 이모씨는 지난해 12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씨는 다만 국적을 속여 발급받은 여권을 사용한 혐의(여권법 위반 등)에서는 유죄 판결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대북 무역업자였던 이들은 지난해 7월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서 북한의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40대 남자로부터 지령을 받고 군사기밀을 탐지하고 수집한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국내 위성항법장치(GPS)를 무력화할 수 있는 전파 교란 기술을 북한 측에 넘기려 한 혐의도 받았다.
하지만 이씨는 판결 이전 이미 비전향장기수가 아닌 1990년 전향서를 쓰고 석방된 ‘전향 장기수’로 밝혀졌다. 경찰의 보도자료에는 이씨가 비전향 장기수라고 소개돼있지만 사실과 달랐던 것이다. 또 경찰이 군사기밀이라고 주장했던 자료도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수준의 것들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에게 지령을 내렸다는 북한 공작원의 실체도 밝혀내지 못했다.
이 사건 역시 초기 언론들은 김씨와 이씨의 간첩 혐의를 사실상 기정사실화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당시는 통합진보당과 관련해 정치권에서 종북 논란이 거셌던 때였다. 비슷한 시기 발표된 ‘GPS 간첩’ 사건은 불을 지핀 셈이었다.
공안사건은 혐의를 받는 것만으로도 ‘천형’에 가깝다. 더욱이 간첩 등 무시무시한 혐의는 일단 제기되면 이후 무죄를 받더라도 당사자들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언론이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안에 관심을 갖고 보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공소 제기도 되기 전에 수사기관의 발표나 비공식적 정보에 의존해 혐의를 단정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최근 충격을 주고 있는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혐의 보도도 이런 관점에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의 사고방식이나 주장이 사회적 상식과 어긋나는 것과는 별도로 ‘공안몰이’식으로 비춰지는 보도는 지양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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