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장] "그 신문이 그신문" 벗어나는 계기로
중앙일보 가판폐지 검토를 환영한다
중앙일보가 가판 신문 폐지를 검토 중이다. 신문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자는 게 그 취지라고 한다. 우리는 가판 폐지를 통해 지면 차별화를 시도하겠다는 중앙일보의 전향적인 자세에 박수를 보낸다. 가판이 사라지면 오래지 않아 다른 신문 눈치 보기, 나아가 다른 신문 베끼기 관행이 신문업계에서 퇴출하고 신문사마다 나름대로 지면을 꾸미게 될 것이다. 언론사 세무조사에 즈음해 나타나고 있는 논조의 차별화가 지면의 다원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성급한 기대도 해 본다. “그 신문이 그 신문”이라는 당연한 비판을 우리 신문들이 발전적으로 수용한다면 가판 폐지를 지면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신문도 자기 색깔을 띠는 시대가 닥쳤다.
가판은 대형 신문사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1만부 안팎밖에 찍지 않는 소수의 신문이다. 도심의 지하철역 등에서 일반 시민들에게도 팔리지만 주요 독자는 정부 부처와 대기업의 공보·홍보 관계자들이다. 이 부지런한 독자들은 업무상 다음 날 새벽까지 신문이 오기를 기다릴 만한 여유도 없지만 무엇보다 소속 집단에 불리한 기사를 빼거나 고치기 위해 가판을 훑는다. 이들이 기사를 변형시키기 위해 신문사를 상대로 로비를 벌인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대기업들이 그 대가로 광고를 주겠다고 유혹하거나,로비가 통하지 않으면 반대로 광고를 주지 않겠다고 ‘위협’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가판이 없어지면 이런 음성적인 거래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가판 폐지는 광고의 수입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우리 현실에서 어쩌면 신문이 본래의 그 주인인 독자들에게 더 민감해지고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정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아가 가판 폐지야말로 우리 신문들이, 세무조사로 촉발된 언론 개혁·탄압 논쟁에서 벗어나 언론계 스스로 자율적인 개혁을 추동하는 스타트 라인으로 삼을 만하다고 우리는 본다. 그것이야말로 언론 개혁을 요구하는 권력에 당당히 맞서는 길이기도 하다. 정부고 언론이고 이제 ‘남다른’ 혜택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빠른 정보에 대한 독자들의 욕구, 진정한 가판 수요는 이미 신문사마다 제공하고 있는 인터넷 신문으로 충분히 부응할 수 있다.
가판 폐지는 그러나 그리 만만하게 볼 일은 아니다. 당장 기자들의 근무 형태가 달라진다. 그렇지 않아도 과중한 근무강도도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에 비용이 드는 것은 그러나 당연한 일이다.
일찍이 1990년대 중반 중앙일보가 가판 폐지를 검토하다가 중단한 것도 인원과 비용의 추가 부담 문제에 부닥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외판 제작, 지방 배달 등의 문제도 간단치 않을 것이다.
모쪼록 가판 폐지 검토와 논의가 신문계에 확산돼 이번에는 결실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가판 폐지는 우리 신문들이 권력집단 및 광고주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한편 독자들에게 다가서는 큰 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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