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김상훈 동아일보 기자 |
|
|
“우리는 여건을 안락하게 만들기를 좋아하네.”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중에서)
가끔씩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다시 꺼내들곤 한다. 고전이 늘 그렇듯 읽을 때마다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이번에는 주인공 ‘야만인’과 신세계의 통치자인 무스타파 몬드가 나눴던 이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최근의 불편한 마음 탓이다.
얼마 전 세계 최대의 인터넷 업체 구글이 새로운 기술을 선보였다. ‘하이라이트’라는 이 기능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분류해 볼 만한 사진을 자동으로 골라주는 기능이다. 구글의 슈퍼컴퓨터가 사람들이 올린 사진 속의 사람과 장소, 노출 및 초점 등을 분석해 ‘중요한 사진’을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게 무슨 별 일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구글은 이 과정에서 사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얼굴을 분석해 비슷한 형태의 얼굴 패턴이 같은 사람이란 걸 스스로 깨닫고, 이 얼굴의 주인공이 자주 등장하면 ‘사진을 올린 사람과 가깝고 중요한 사이’라고 판단도 한다.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의 위치 정보를 파악해 특정 위치에서 전송되는 사진이 많다면 자주 등장하는 풍경을 분석해 이 풍경이 ‘랜드마크’라는 것도 깨닫는다. 그러니까 구글은 우리가 사진을 찍을 때마다 누가 우리의 친구이고, 어떤 장소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소인지 배우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사진의 초점이 잘 맞았는지, 노출이 적절한지까지 골라낸다. ‘괜찮게 나온 사진’ 같은 아주 주관적인 심미적 영역까지도 구글이 판단하고 있는 셈이다.
사진만이 아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최근 디지털 음악 산업의 트렌드는 음악을 ‘맞춤형’으로 추천하는 것이다. 음악 소비자 개개인이 듣고 싶어할 음악을 슈퍼컴퓨터가 족집게처럼 골라내 더 많은 음악을 사도록 부추긴다. 구글은 물론 애플과 스포티파이, 판도라 등 수많은 IT 기업들이 이렇게 ‘아마도 당신이 좋아할 음악’을 우리의 귀에 들려준다. 평소 즐겨 듣는 음악 정보를 수집해 통계적으로 선호될만한 다른 음악을 제안하는 게 원리다.
이런 식의 판단은 수없이 많은 분야로 확산된다. 인터넷의 슈퍼컴퓨터들은 우리가 ‘아마도 좋아할 식당’을 추천해주고, ‘아마도 관심을 가질 뉴스’를 읽으라고 제시하며, 심지어 ‘아마도 사랑에 빠질 데이트 상대방’까지 맞춤형으로 골라 소개해 준다.
그래서 오늘날의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무스타파 몬드와 같다. 우리가 힘든 발굴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우리의 취향이 발견되도록 여건을 안락하게 만들어준다. 누군가는 안락함 대신에 진정한 위험을 원할지도 모르겠지만 기술은 이 모든 걸 가차없이 ‘불행해질 권리’로 묘사한다. 구글이 너무 많은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너무 강력한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할 때마다 내놓는 대답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는가? “이런 기술 덕분에 여러분의 삶은 더 편리해질 것입니다”였다.
이런 식의 ‘맞춤’과 ‘추천’의 기술 속에서 사라지는 건 아웃라이어(outlier)다. 현실에선 상관 관계를 벗어나는 예외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맞춤과 추천을 통해 다듬어진 안락한 여건에서 아웃라이어는 사라진다. 예를 들어 현실의 나는 비틀즈와 김광석을 좋아하지만 간혹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도 듣는다. 하지만 구글과 애플은 내게 단 한 곡의 클래식도 제시하는 법이 없었다.
음악 취향 정도야 그렇다치자. 이게 정보와 지식의 문제가 되면 어떨까. 새누리당 지지자에게 여당 성향의 뉴스만을 반복 제시하고, 민주당 지지자에게 야당 성향의 뉴스만을 반복 제시하는 인터넷 뉴스 서비스가 ‘맞춤’과 ‘추천’이란 이름으로 반복된다면? 사실 이런 기계적 추천이 없이도 이미 인터넷에선 이런 일이 반복해 벌어지기 시작했다.
‘멋진 신세계’의 결말은 주인공의 자살로 끝난다. 그렇다면 우리 세계의 결말은 과연 무엇일까.
김상훈 동아일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