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극우와 일본인, 그리고 우리언론

[스페셜리스트 | 외교·통일] 김동진 세계일보 기자·외교안보부


   
 
  ▲ 김동진 세계일보 기자  
 
한 줄의 표현이 일본을 뒤흔들고 있다.
국내 한 매체가 지난 20일 ‘아베, 마루타의 복수를 잊었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2차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미군의 원폭투하가 ‘신의 징벌’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일본의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일본 정부가 주한 일본 대사관을 통해 해당 언론사에 항의한데 이어 일본 정부의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정례 브리핑에서 “그런 인식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해당 칼럼의 취지는 아베 총리가 2차대전 때 생체실험을 자행한 731부대를 연상시키는 로고가 찍힌 전투기에 탑승한 ‘퍼포먼스’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신의 징벌’이란 표현 앞에 무색해지고 말았다. 7만여명의 조선인이 그 원폭 투하로 희생됐고 2500명 이상의 한국인 원폭피해자가 고통 속에 살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국내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칼럼 필자가 뒤늦게 유감의 뜻을 표명했으나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번 소동을 계기로 일본 정부와 정치인들의 망언에 대한 국내 언론의 보도방식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일본 정치권이 보이고 있는 역사퇴행적 행태에 찬성하지 않는 일본인들도 여전히 많다. 한·일관계 전문가들은 극우 인사들과 일본 시민들을 분리해서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렇지 않고 일본인 전체를 싸잡아 위안부 존재를 부정하는 ‘위선자’로 몰아가거나 일본 국가와 민족 자체를 폄하하는 듯한 표현을 남발하는 것은 오히려 반발만 초래할 뿐이다.

예를 들어보자. 일본 도쿄의 한인타운인 신오쿠보에서는 매주 일요일마다 극우단체인 ‘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의 반한 시위가 열린다. 이들은 “한국인 여성을 강간하라” “한국인은 바퀴벌레” 등의 반인륜적 구호를 쏟아낸다.

그러나 바로 길 건너편에서는 이런 인종차별적 반한시위에 반대하는 또 다른 일본인들의 시위가 열린다. 양측 시위대가 도로를 사이에 두고 팽팽하게 대치하기 때문에 일본 경찰은 매번 양측간 충돌을 막느라 진땀을 뺀다.

일본 사회내 이런 구도는 하시모토 도루 일본유신회 공동대표의 위안부 망언 소동에서도 확인된다. 전시에 위안부가 필요했다고 주장했던 하시모토는 27일에는 외신기자 회견을 열어 “한국 정부가 납득하지 않는다면 독도 문제와 함께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면 된다”는 주장까지 내뱉었다.

그의 주장은 이미 국제사회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일본내에서도 역풍을 맞고 있다. 한때 일본인들 사이에서 차기 총리감으로 손꼽히던 유망 정치인에서 이제는 극단 세력의 아이콘으로 추락해가는 모습이다.

이런 일본내 사정을 안다면 반한시위나 하시모토 망언 등을 ‘무조건적 일본 때리기’의 소재로만 사용할 수 없다. 일부 극우 정치인의 행동을 전체 일본인의 행동인 양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만 낼 뿐이다. 위안부 존재 부정이나 침략 미화 발언 등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 상당수 일본인들도 자기 민족이나 국가가 무차별적 비판을 받는다고 느낄 경우 ‘한·일 민족갈등 프레임’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일본내 우경화 흐름을 제대로 견제하려면 민족 갈등이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구도 하에서 일본내 다양한 세력과 연대해야 한다. 일본통인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우리 언론들이 일본의 우경화나 망언 소동을 다룰 때 일본 전체의 문제로 몰아가지 말고 그 문제를 일으킨 정치인이나 집단을 정확히 핀포인팅(Pin-Pointing)해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세력을 공격하기 위한 미군의 폭격 작전이 오폭으로 많은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오히려 ‘반미 감정’만 격화시킨 것처럼 우리 언론의 부주의한 보도가 평범한 일본인들까지 우경화로 내몰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김동진 세계일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