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속도'로 혁신되는 소프트웨어

[스페셜리스트│IT] 김상훈 동아일보 기자·산업부


   
 
  ▲ 김상훈 동아일보 기자  
 
예전에 미국 실리콘밸리의 페이스북 본사를 취재할 때였다. 이 회사 직원 한 명이 자신들에겐 크게 두 가지 과제가 주어진다고 했다. 첫째는 ‘스스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이고, 둘째는 ‘스스로 하기 싫은 일은 기계가 하도록 만들 것’이었다.

페이스북의 요구는 단순하지만 강력했다.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못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있는 페이스북 같은 직장에 다니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참고 하는 대신, 하기 싫은 일을 기계에게 시킬 수 있을 만큼 똑똑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런 원칙 덕분에 페이스북은 올해 글로벌 취업 정보사이트 글래스도어가 선정한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에서 맥킨지컨설팅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꿈의 직장’으로 유명한 구글도 6위에 그쳤다.

이게 어디 페이스북만의 일일까. 아마 앞으로는 모든 기업이 자신들의 직원에게 이런 방식으로 일할 것을 요구하지 않을까?

최근에 IFTTT라는 웹서비스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웹서비스는 ‘만약 이렇다면 저걸 해라’(if this then that)의 준말이다. 기능은 단순하다. ‘오늘 비가 온다면 내 핸드폰에 우산을 가져가라는 문자를 보내 달라’거나, ‘내가 e메일을 읽다가 별표를 누른다면 그 e메일 내용을 에버노트에 따로 저장해 달라’는 식이다.

소프트웨어 지식은 하나도 필요하지 않았다. 수많은 서비스를 골라 넣으면 그만이다. 예를 들어 비가 오면 알려주는 기능은 ‘날씨’ 앱을 고른 뒤 ‘비’라는 조건을 선택하고 ‘우산을 가져가라’는 문자를 ‘푸시오버(pushover)’라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발송하면 끝이다. 나머지 작업은 이 서비스가 날씨예보 웹서비스에 들어가 날씨를 확인하면서 ‘비’ 예보가 나올 때 문자를 보내주는 일까지 알아서 수행한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도 ‘태스커’라는 자동화 앱이 있고, 맥에도 ‘오토메이터’라는 자동화 소프트웨어가 널리 쓰인다. 모두 프로그램 지식이 거의 없다 해도 특정 조건과 실행을 결부시켜 단순 작업을 줄여주는 앱이다. 그리고 이런 걸 다루는 건 스마트폰 사용법을 배우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을 만큼 쉽지만 일단 완성된 자동화 업무를 보면 전문 프로그래머가 만드는 소프트웨어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세상에서 숙련 기술치고 점점 접근이 쉬워졌던 기술은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의학은 끊임없이 발전하면서 전문의 같은 새로운 자격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법학은 법률가에게 사법고시로만 평가하던 방식을 벗어나 사회 경험을 갖고 로스쿨에 진학해서 법률 지식과 경험을 모두 갖추기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다르다.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지식의 양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프트웨어에 접근하는 문턱은 점점 낮아진다. 전문 지식이 레고 블록처럼 잘 조립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프트웨어는 값이 싸다. 무료로 공개된 소프트웨어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이른바 공개 소프트웨어라고 불리는 이런 소프트웨어는 상업용 소프트웨어처럼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든 것이지만 값이 무료다. 이유는 간단하다. 애초에 이런 공개 소프트웨어도 다른 공개 소프트웨어를 개선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무료로 혜택을 봤으니 내 다음 사람도 무료로 혜택을 보라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자발적 선의가 수십 년 동안 쌓인 덕분에 이 업계에선 지적재산권을 걱정하지 않으면서 혁신을 빛의 속도로 일으킨다. 그리고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무료 또는 아주 싼 값에 그 혜택을 함께 본다.
그러니 소프트웨어는 현대 사회의 새로운 철근 콘크리트다. 21세기의 문명을 쌓아 올리는. 김상훈 동아일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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