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권오상 소년한국일보 취재부 차장
'스포츠 꿈나무' 홀대하는 언론, 전국소년체전 외면 취재기자 아예 없어…텅 빈 중앙기자실 혼자 이용
한국언론의 '오늘'이 한심스럽다. 그래서 한국체육의 '내일'은 걱정스럽다.
편향된 시작의 장삿속 언론잣대에 21세기를 이끌 한국 스포츠 꿈나무들이 시들어 가고 있다. 최근 제주도 일원에서 개최된 제28회 전국소년체육대회(5월 29일∼6월 1일)는, 중앙에서 발행되는 종합 일간지, 스포츠신문, 방송 등이 철저히 외면한 가운데 치러저 선수, 지도자, 학부모들로부터 많은 원성을 샀다.
단 한 명의 취재진도 파견하지 않은 서울지역 언론의 배려(?) 덕분에 나는 직통 전화 10대와 팩시밀리 2대가 놓여진 넓디넓은 '중앙신문 기자실'을 혼자 독차지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대회 첫 날 대한체육회 공보실 직원 3명을 비롯해 기자실에 파견나온 개최지 시·도 공무원, 자원봉사자들은 텅 빈 기자실을 보며 모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체전 기간 내내 중앙방송 기자실, 중앙사진 기자실은 단 한 명의 취재진도 없이 행정보조 요원과 자원봉사자들이 낮잠을 즐기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어느 교육청의 한 장학관은 기자실에 들러 "앞으로 한국의 학교체육·엘리트 스포츠는 모두 없애버리고, 생활체육이나 즐기는 것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나를 포함한 언론을 향한 포화였다. 경기장을 순회하다가 만난 한 꼬마선수는 "취재하면 신문에 실리나요? 모든 신문에 한 줄도 안 쓰던데요?"라고 말하며 원망 어린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전국 16개 시·도에서 1만3000여명이 넘는 대규모 선수단이 참가한 이 '새싹들의 잔치'가 각 매체에 단신으로도 처리되지 못할 만큼 기사가치가 없는 것일까? 각 회사마다 5∼6명씩의 기자들로 특별취재반을 편성, 100여명의 취재진들이 들끓었던 70∼80년대의 소년체전 기자실을 떠올려 본다.
1972년부터 열리기 시작한 전국소년체전은 자라나는 스포츠 새싹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준 희망의 축제였다. 이 대회를 통해 수많은 체육 꿈나무들이 탄생했다. 이들은 올림픽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금메달 획득으로 한국 스포츠의 위상을 드높였고 국민들의 사기 또한 크게 진작시킨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중앙 언론들은 프로야구, 축구 등 일부 인기 종목 선수들의 시시콜콜한 움직임까지 취재해 보도하면서 '꿈나무들의 축제'인 소년체전은 홀대하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현재의 프로 스포츠 스타급 선수들은갑자기하늘에서 떨어졌나? 땅에서 솟아올랐나? 전국소년체전 등에서 발굴, 육성된 꿈나무들이 자라서 오늘날의 그들이 되지 않았는가?
언론의 상업성과 독자·시청자들의 인기를 좇아가는 흥미 지향적 기사욕구 등을 모두 감안하더라도 참 언론이라면 최소한의 책무는 수행해야 하지 않을까? 열악한 여건에서 힘겨운 훈련을 이겨내며 희망을 키우는 어린 새싹들을 언론이 따뜻하게 격려해주지 않는다면 한국체육의 뿌리는 송두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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