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전당, 마산에는 '개 발에 닭 알'

[스페셜리스트│지역]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기자·갱상도 문화학교 추진단장


   
 
  ▲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기자  
 
민주주의 전당이 있다. 2001년 6월 28일 국회를 통과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에 건립한다고 돼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 과정에서 광주에 짓겠다고 공약했고, 박근혜 현 대통령은 2012년 11월 28일 마산에 짓겠다고 공약했다.

어쨌든 민주주의 전당을 마산에 두자는 얘기는 더 이상 하지 않으면 좋겠다. 마산이 독재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역사적 사건인 3·15의거와 10·18부마민주항쟁의 고장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민주주의 또는 반독재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마산역에 지난 5일 이은상 시비가 들어섰다. 마산역(한국철도공사)이 터를 내놓으며 제안하고 국제로타리클럽 3720지구가 돈을 내놓아 만들어졌다. 거기에는 ‘가고파’가 새겨져 있다. 여기에 적힌 약력은 경남문협 회장을 지낸 김복근 시조시인이 정리했다.

호가 노산인 이은상은 철저하게 기회주의자였다. 일제강점기에 감옥살이를 한 경력만 빼면 해방 이후 한결같이 권력의 편에 섰다. 1960년 3·15의거와 4·19혁명 과정에서 사람들을 죽이고 다치게 한 이승만 정권을 옹호했으며 독재자 박정희의 5·16 쿠데타가 일어난 뒤에는 곧바로 민주공화당 창당 작업에 참여했다.

1972년 10월 유신헌법 제정 이후에는 ‘유신만이 살 길’이라며 독재정권을 미화·찬양했다. 1979년 부마항쟁과 10·26사태가 지난 뒤 박정희 추모시를 썼을 뿐 아니라 1980년 5월 광주항쟁을 짓밟고 새로 들어선 군부세력인 전두환 정권까지 옹호했다.

이렇게 살다 간 이은상은 생전에 단 한 차례도 반성·사과하지 않았다. 본인으로서는 사과할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그이는 ‘나는 양지만 골라 딛는다’를 소신으로 삼았고 실제로 그 소신대로 살았을 뿐일지도 모른다.

이은상을 마산의 많은 문인들은 좋아한다. 어쩌면 자기네 이익을 위해 좋아하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들은 마산문학관도 노산문학관으로 이름을 바꿔야 하고 지금 들어선 가고파 시비도 그대로 놓여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게다가 마산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이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여기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가고파’ 가곡을 즐겨 부르는 이들도 쉽사리 볼 수 있다.(사실 ‘가고파’는 마산 사람이 아니라 마산 ‘출신’ 사람을 위한 노래다. 서울 따위 다른 데 나가 살면서 ‘떠나온’ 마산을 그리워하는 노래다.)

만약 광주라면 어떨까?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인정하지 않고 당시 항쟁을 짓밟은 전두환 일당을 옹호·찬양·미화했던 사람이, 이를테면 빼어난 문인이라 해서 그 시비를 광주에 들이세운다고 하면 광주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물어보나 마나다.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광주는 그동안 이를테면 광주민주화운동에 담긴 정신을 나름대로 갈고닦아 왔다. 그래서 광주 사람들은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고 아무리 광주 출신이라 해도 광주의 정신을 짓밟으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산은 다르다. 3·15와 10·18은 뼈도 살도 남아 있지 않다. 이은상이 미화·찬양·옹호했던 세력이 지역을 전면적으로 온전하게 장악하고 있다. 심지어 3·15의거기념사업회 회장이라는 사람조차 이은상을 지켜내야 한다고 떠들고 있다.

이런 마산에 민주주의 전당이 들어선다면 지나가는 개조차 웃을 일이다. 3월 15일의 마산 의거는 4월 11일 김주열 열사의 주검이 마산중앙부두 앞에 떠오름으로써 더욱 발전됐다. 그리고 4월 19일과 26일 혁명으로 완성됐다. 김주열은 마산 3·15와 4·11의 꽃이다. 김주열 열사 앞에서 3·15와 4·11을 지키지 못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새로 시작해야 마땅하지 싶다.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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