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또다시 시끄럽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가 공정방송 실현의 기대를 갖고 파업을 마무리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벌어진 일이라 더욱 안타깝다.
파란의 핵심은 이길영 KBS 이사장이다. 그가 이사로 선임된 자체도 논란이었지만 이사장에 선출된 과정을 보면 상식적이지 않은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방송법 제4장 한국방송공사 제46조는 KBS 이사회에 대해 ‘공사는 공사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공사 경영에 관한 최고의결기관으로 이사회를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49조 이사회의 기능에서는 ‘방송의 공적 책임에 관한 사항’을 포함해 10가지가 넘는 항목에 대해 심의 의결한다고 돼 있다. KBS 이사회는 그만큼 한국 최대 공영방송을 좌지우지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이번 이사회 구성과 이사장 선출 과정은 과연 ‘독립성과 공공성 보장’에 걸맞았는지 의심스럽다. KBS 새노조 등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를 보자. 첫 번째는 이길영 이사장의 과거 행적이다. 지난 1986년 이후 보도국장과 보도본부장을 지내면서 이른바 ‘땡전뉴스’의 오점을 남긴 편향보도의 책임자라는 것이다. 게다가 한나라당 지방선거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까지 지냈다. 두 번째는 학력위조 의혹이다. 이 이사장이 제출한 공공기관 이력서에도 나오듯 최종학력이 국민대학교로 돼있지만 이 이사장이 실제 졸업한 국민산업학교는 국민대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아직 명쾌한 해명은 없다. 이런 그가 과연 공영방송 이사회의 수장으로서 자격이 있을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땡전뉴스 시절의 인물이 등장한단 말인가.
이는 근본적으로 KBS 이사회를 구성하는 방식의 문제점에서 비롯됐다. ‘KBS 이사는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게 방송법의 규정이다. 그러나 법은 현실과 멀었다. 수많은 방송법 개정 논의가 있었지만 이번 이사회 역시 여권 7명, 야권 4명의 이사들로 불균형을 이뤘다. KBS의 독립성에 치명적일 수 있는 의혹을 해소하지 않고 이사장 선출을 강행했다는 것은 ‘다수의 정치적 횡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KBS의 역사는 독립성 확보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독립적 사장 선임은 남은 과제였다. 차기 사장만큼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러나 사장 임면제청권을 쥔 이사회의 수장이 이같은 논란을 끌어안고 자리에 있는 이상 KBS는 다시 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이제 대통령 선거가 100일도 남지 않았다. KBS 이사장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으면 국민은 KBS 대선보도를 공정하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노사가 대선 공정보도 협약을 백번 맺은들 소용이 없다.
또 ‘특보 사장’이라는 멍에 속에 지난 4년을 보낸 KBS다. 그 여파로 숙원인 수신료 인상마저 좌절됐다. 이제 또다시 ‘한나라당 후보 선대위원장’ 이사장으로 눈총을 거듭 받기를 원하는 KBS 구성원은 없을 것이다. 이러다가는 KBS 수뇌부가 되려면 선거운동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40년 언론인 생활을 한 이길영 이사장은 KBS에 부담이 되기를 원하는가. 스스로 선택할 때다.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