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여기서 주저앉을 것인가

[우리의 주장]편집위원회

“우리 일생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늘 말합니다. 너 인생이 무엇이냐.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분쟁과 갈등의 바람이 쉬지 않고 불어 안개 같은 삶을 산지사방으로 흩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금세안심 내세복락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해와 평화를 가지고 사람과 사람사이에 화해와 평화를 가져와야 되는 것입니다.”

조용기 국민일보 명예회장이 지난해 여름 순복음교회에서 가진 주일 설교의 한 구절이다. 갈등과 반목이 끊이지 않는 우리 사회, 언론계에서도 한번쯤 곱씹어볼 말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새겨들어야 할 곳은 멀지 않는 곳에 있는 듯하다. 바로 국민일보가 그렇다. 화해와 평화는 멀고 분쟁과 갈등은 가까운 게 현재 국민일보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국민일보의 파업 노조원 대량징계 방침은 안팎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인사위원회의 1차 결과는 4명 해고, 5명 정직의 중징계가 내려졌다. 4명 중 3명은 권고사직이라지만 1주일 내에 사표를 내지 않으면 해고가 가능해 사실상 해고나 다름없다.

국민일보 노조는 임단협 결렬에 따른 적법한 절차를 거쳐 파업에 돌입했다. 절차적 합법성을 떠나서도 노조의 요구는 타당했다. 국민일보 노조가 내건 요구는 큰 의미에서 편집권 독립과 비리 혐의에 연루된 조민제 사장의 퇴진이었다.

편집권 독립은 언론 노동자에게 가장 중요한 근로조건이다. 단순히 임금 몇 %를 인상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문제다. 사측의 주요 간부들도 기자 선배로서 “기자는 월급쟁이와 다르다”고 후배들을 가르쳐 왔을 것이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커다란 모순이다.

또한 언론사의 얼굴인 사장이 각종 비리 혐의로 사정기관에 불려 다니는 모습은 신뢰가 생명인 언론사에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 이에 구성원들의 독립적인 결사체인 노조가 거취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자기 회사 사장이라고 무조건 감싸고 도는 것보다 백배 나은 일 아닌가. 양식있는 독자들은 “그래도 국민일보 기자들은 살아있구나”라며 격려를 보낼 일이다.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사측의 대량 중징계 방침은 부당하다. 173일이 넘는 파업 끝에 편집국이 오랜만에 꽉 차게 된 국민일보다. 눈물겹게 화해하려고 노력해도 그 상처가 언제 치유될 지 알 수 없다. 그렇게는 못할망정 4명이나 되는 후배 기자들의 펜을 빼앗겠다고 한다. 이는 초유의 동시 파업 사태의 파도가 휩쓸고 간 다른 언론사에 비해서도 잔혹하기 짝이 없다. 한꺼번에 4명이나 되는 기자를 해고시킨 것은 이번 정권 들어서는 2008년 YTN 해직사태 이후 처음이다.

국민일보는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론의 기능을 발휘해온 모범 신문이었다. ‘교육 부총리 논문 표절 의혹’, ‘사회지도층 쌀 직불금 수령 보도’ 등 수많은 특종을 터뜨리며 경쟁 신문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유능한 기자들이 많다. 무엇이 그들을 절망하게 하는가. 사랑했던 국민일보를 등지게 만드는가. 마치 점령자 로마군이 눈엣가시였던 카르타고인을 학살하듯 증오에 물든 징계의 칼부림이 춤출 때, 국민일보는 여기서 주저앉을 것이다.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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