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사장 퇴진을 외치는 언론사 공동파업의 계기가 됐던 MBC의 파업이 장장 반 년 만에 이제 막을 내린다. 물론 여야 합의에 의해 곧 이뤄질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앞당기기 위한 잠정중단이지만 800명에 가까운 MBC 방송인들이 드디어 그리웠던 방송현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파업의 첫째 이유였던 김재철 사장이 아직 물러나지 않은 상황이기에 이번 파업의 공과를 따지기엔 아직 이르다. 그러나 MBC본사 조합원의 80% 가까운 인원이 해고와 정직, 대기발령 등의 징계 속에서도 파업대오를 굳건히 유지했고, 결국 여야 정치권이 MBC사태 해결을 합의하도록 이끈 건 파업참가자들의 진정성이 이룬 크나큰 결실이다.
그런데 이번 파업은 이렇게 1차적인 결과 외에 우리 사회, 그리고 우리 기자 집단에 두고두고 곱씹어봐야 할 시사점을 남겼다. 언론의 뉴스생산에 영향을 주는 가장 바깥쪽의 요인인 정치권과 시민사회, 그리고 가장 미시적이고 최후의 척도라 할 언론인의 전문성 이 모두에서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여론형성과 문화의 중심인 공영방송의 파행이 무려 반년이나 이어지도록 방송통신위원회 등 감독기구는 물론 그 뒤의 정치권은 아무 역할을 못했고 오히려 파행을 조장했다. 정부와 여당은 비리가 터져 나오는 낙하산 사장을 감싸 더 노골적인 친정부 방송을 조장했고, 야당은 야당대로 선거 등 정치적 이해를 따지며 거리로 나온 언론인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셈이다.
물론 시민들이나 사회단체들의 여론은 공정방송 회복을 외친 언론인들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태해결을 위해 정부나 정치권을 압박하는 데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한 마디로 사회갈등의 조정이나 여론형성 등 우리 사회의 공적 영역의 역량이 취약했던 것이다.
특히 취약한 정도가 아니라 위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건 바로 우리 기자들의 윤리였다. 한때 기자였던 김재철 MBC 사장은 방송의 공정성을 훼손했을 뿐만 아니라 공영방송의 재산을 맘대로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까지 받게 됐다. 앵커가 노조원들의 항의를 받고는 정신적 충격으로 방송을 못하게 됐다며 톱뉴스를 내보낸 MBC 경영진의 해괴한 행동도 그야말로 시청자들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준 공영방송의 사유화였다.
가장 슬픈 일은 파업기간 중 선발돼 땜질뉴스를 양산했던 수십 명의 계약직 및 시용기자들의 존재이다. 방송의 독립성을 지키겠다고 싸운 언론인들의 빈자리를 노리고 들어간 그들, 지금도 객관성을 잃은 파행적 뉴스를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시용기자들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장기간의 훈련을 거쳐 자신의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뉴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언론인의 전문성은 이들 MBC 시용기자들의 존재 때문에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있다.
MBC 노조원들의 고된 투쟁은 끝났지만 이번 파업은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남겼다. 시민들이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게 객관적 정보를 전달한다는 언론의 역할을 깡그리 무시하는 정치권, 그리고 언론의 역할 따위 고민하기보다는 방송사 입사가 우선인 ‘기자직’ 종사자들. 하나는 유권자인 시민들이, 다른 하나는 우리 기자사회가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숙제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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