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의 눈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그 누구보다 현장에 먼저 도착해 끝까지 남아 있어야 하는 기자들이 있다. 이들은 일주일도 아니고, 하루도 아니고 분 단위로 피를 말려야 한다. 그 이름은 통신사 기자, 연합뉴스 기자들이다.

국가기간통신사 연합뉴스의 기자들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바보 온달’처럼 묵묵히 일해왔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다른 매체의 몫으로 양보하고 기자실 구석의 비좁은 책상에서 통신사 기자로서 자기 할 일을 지켰다.

그랬던 그들도 눈물을 쏟아내야 했던 기억이 있다. 4년 전 12월, 연합뉴스는 눈물바다가 됐다. 중국에서 날아 온 비보 때문이었다. 조계창 선양 특파원이 취재 중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 누구보다 기자정신에 투철한 그였기에, 야속하게 정만 듬뿍 남겨놓고 떠난 동료였기에 연합은 애절한 비통함에 잠겼다. 기자로서 한반도 평화에 헌신하고자 했던 그의 뜻을 기려 제정된 ‘조계창 국제보도상’은 연합 기자들의 깊게 파인 눈물자국이자 그가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했던 저널리스트의 길을 잇겠다는 약속이었다.

다시는 울지 않으리라, 기사로서 보답하리라고 다짐했던 연합 기자들은 조계창을 앗아갔던 그 계절처럼 찬바람이 파고드는 거리에 모였다. “오늘은 우리가 연합뉴스의 주인이 된 날입니다.” “오랜 오욕의 역사를 딛고 연합뉴스는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말하는 이는 울먹였고 피켓을 든 손은 떨렸다. 기자들의 눈에는 어느새 다시 이슬이 맺혔다.

왜 이들은 또다시 울어야 했는가. 무엇이 이들을 울렸던가. ‘국가기간통신사’라는 자부심 하나로 버텨온 ‘바보 온달’들을 거리로 나서게 했는가. 국제적인 경쟁까지 치열해지는 요즘 AP통신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인력으로 고투했던 이들이 노트북을 닫고 떨쳐나선 데 다른 이유는 없다. ‘공정 보도’ 한 가지다. 더욱이 연합은 한국 언론 공정보도의 시작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연합이 ‘야마’를 잡으면 그것이 그날의 ‘야마’가 된다”는 말이 전혀 헛말은 아니다. 이 소명을 지키겠다는 게 연합 기자들의 외침이다.

연합뉴스의 지위와 위상은 ‘뉴스통신진흥법’으로만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공정보도가 피어나지 못하는 황무지에는 제 아무리 훌륭한 법도, 제도도 꽃을 피울 수 없다. 국민의 신뢰가 질식된 사막에서 ‘국가기간통신사’의 꿈은 신기루일 뿐이다. 저널리즘을 수호하겠다는 구성원들의 의지와 노력이 수백 가지의 찬란한 논리보다 더 중요하다. 그래서 연합 기자들의 눈물은 한국 저널리즘과 함께 작게는 회사를 살리는 소나기와 같다.

이제는 연합을 이끄는 선배들의 차례다. 후배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그들에게 달려가 넉넉하게 안아줘야 한다. 설마 툭 하면 후배들의 목을 치고 중징계를 내리는 다른 언론사 수장들을 닮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그 어떤 것보다 사랑하는 연합뉴스와 후배들의 눈을 먼저 바라볼 것이라고 의심치 않는다.

물론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고뇌에 찬 결단이 요구되는 일이다. 그러나 만약 선배들이 자신을 희생해 후배들을 지키고 연합뉴스 사태를 슬기롭게 해결한다면 그날은 연합뉴스가 진정한 국가기간통신사로 큰 걸음을 내딛는 기념일로 기억될 것이다. 조계창 아래 하나가 됐던 연합뉴스, 이제 공정보도 아래 하나가 되어야 한다.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