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커버그 프로젝트'보다 시급한 일

[스페셜리스트│IT] 김상훈 동아일보 기자·산업부


   
 
  ▲ 김상훈 동아일보 기자·산업부  
 
‘무어의 법칙’이란 게 있다. 1년 반 동안 반도체 성능이 계속 두 배씩 늘어나기 때문에 컴퓨터의 기계적 능력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논리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의 대통령 직속 과학기술 위원회는 독일의 컴퓨터 과학자 마틴 그뢰첼의 연구를 인용해 이런 발전 속도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1988년부터 2003년까지 15년 동안 우리가 쓰는 컴퓨터의 기계적 능력이 무려 1000배 발전했다는 것이다. 맞다. 삼성전자도 반도체를 잘 만든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같은 기간 컴퓨터의 계산능력이 4300만 배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논리적 처리과정을 뜻하는 ‘알고리듬’이 같은 기간 동안 4만3000배 개선된 덕분이었다. 기계의 발전 속도도 빨랐지만 그 기계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가 훨씬 빨리 발전한 것이다. 한국에 이걸 잘 하는 회사는 별로 없다.

이런 알고리듬의 발전 덕분에 요즘 세상에서는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스마트폰이 사람과 대화하기 시작했고, 컴퓨터가 인간 ‘퀴즈왕’과 퀴즈 대결을 해 승리를 거두게 됐다.

의사와 변호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의 역할도 판례를 모두 기억했다가 빠르게 찾아내는 법률 프로그램과 임상결과를 외운 뒤 증상만으로 적절한 치료법을 제시하는 컴퓨터로 대치된다.

하지만 컴퓨터는 만능이 아니다. 예를 들어 체스 시합의 수를 내다보는 능력은 컴퓨터가 사람보다 낫지만 멋지게 이발을 해주는 기계는 없다. 논리는 컴퓨터가 나은지 몰라도 사람의 감(感)은 논리보다 훨씬 정교하고 놀랍기 때문이다.

이런 역설적 상황은 계산능력으로는 세계 최고라는 검색회사 구글을 알고리듬의 신화에서 벗어나게 했다. 프로그램을 이용한 자동 검색으로 유명한 구글은 최근 검색결과를 판단하기 위해 컴퓨터가 어떤 변수를 넣고 뺄지 정하도록 방임하지 않는다. 대신 검색팀의 엔지니어들이 직접 사람의 눈으로 변수를 하나씩 넣어보고 유용한 변수를 판단한다. 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인기 있는 소셜네트워크회사 페이스북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들은 구글이 이렇게 찾아내는 정보도 결국 논리적인 정보일 뿐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논리적으로 설명이나 예상이 불가능한 ‘그 무언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페이스북은 알고리듬 대신 친구들의 활동을 해석한다. 친구가 보는 영화, 친구가 산 구두 등의 정보를 모아 유사점을 찾은 뒤 ‘미처 생각조차 하지 못한 놀라운 추천’을 제시하는 것이다.

알고리듬이 기계보다 수십 배 중요하고, 이렇게 중요한 알고리듬의 효용마저 의심받은 뒤에 그 한계가 극복되는 게 오늘날 세계 기술의 트렌드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필요했던 건 알고리듬을 위한 수학과 물리학 등 기초과학 연구였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취재 현장에 있으면 수많은 정보기술(IT) 지원정책을 만난다. 하지만 기초 연구에 대한 지원은 찾기 힘들고 사방팔방에서 ‘한국의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 육성 프로젝트만 넘쳐난다. 이공계 학과에 장학금을 지원하는 대신 ‘뜻만 있는’ 청년들에게 돈을 안겨 보는 것이다. 이 정도면 도박이라고 봐야 한다.

한국 IT 산업이 위기라고 한다. 도박으로 벌어진 격차를 메우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는 한두 번은 몰라도 지속적으로 이기기란 불가능하다. 지금은 ‘저커버그 프로젝트’ 대신 수학과·물리학과 학생들에게 더 많은 장학금을 줘야 할 때다. 김상훈 동아일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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