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언론과 한나라당의 궁합이 척척 맞는다. 공직 선거에 나선 후보자 검증과정이라는 그럴싸한 미명 아래 보수언론이 의혹을 대서특필하면 한나라당이 이를 확대 재생산한다. 학력, 병역, 재산 등을 낱낱이 파헤치고 광범위하게 공세를 펴고 있다. 조직도 미약하고 정치적으로도 단련되지 않은 시민 후보는 냉가슴을 앓는 벙어리처럼 속수무책이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여당 후보와 야권 단일 무소속 후보라는 사상 초유의 구도로 짜여졌다. 하지만 정책 대결보다는 네거티브 선거로 치닫고 있다. 보수 언론과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는 후보 등록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소속 박원순 후보의 각종 의혹을 들춰내며 공세를 펴고 있다. 서울 강남 아파트 거주, 대기업 후원금 수수, 병역 공세 등이다.
동아일보는 지난 8일 박 후보가 6개월 방위로 복무한 것에 대해선 양아들로 입적한 것을 ‘편법’으로 몰아갔다. 다음날 한나라당 김기현 대변인은 병역 회피 의혹을 제기하며 박 후보를 비난했다. 중앙일보도 13일 1면 머릿기사로 정치후원금에 대한 ‘박원순의 말바꾸기’를 공격했다. ‘돈받고 모른 체 할 순 없어’(2000년)라며 정치후원금을 비판했다가 ‘부자 돈 받는 게 뭐가 문제’(2011년)라며 아름다운재단이 대기업에서 후원금 받은 것을 비교했다. 정치후원금과 기부금을 동일선상에 놓고 마치 말을 바꾼 것처럼 매도했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 박 후보는 한나라당이 네거티브 공세를 중단하고 정책대결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세는 효과를 보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경원 후보는 오름세가, 박원순 후보는 하락세가 뚜렷하다.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방이 가열되자 서울대 안철수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까지 나섰다. 박 후보를 지지하고 있는 그는 “제가 서울시장 출마를 고민할 때 시민들의 반응이나 열망을 생각하면 과연 이번 선거에서 흠집내기 경쟁을 시민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18세기 영국의 정치사상가이자 ‘보수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는 “소중한 가치를 위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보수주의”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보수 정당과 보수 언론은 스스로 변화하려고 하기보다는 상대방을 흠집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만 급급하다.
지난 10월3일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박원순 후보의 승리는 시민후보가 정당후보를 눌렀다는 점에서 한국 정당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보수언론은 그저 민주당 흠집내기에 바빴다. ‘1개월 된 시민후보에 제1야당 무릎꿇다’(동아일보) ‘민주당의 굴욕’(중앙일보) 등이 대표적이다. 현상은 맞다. 그러나 근시안적이다. 서울 장충체육관을 찾은 수많은 시민들의 행렬과 투표 열기, 국회의원 총선거 투표율을 웃도는 59.6%라는 기록적인 투표율에 대한 분석은 애써 외면했다.
우리 국민들은 변화를 바란다. 박원순 후보가 범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된 것만 봐도 그렇다. 무책임한 네거티브 공세는 이런 국민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구태의연한 네거티브 선거에 심판을 가하는 국민들의 선거 혁명이 일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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