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도 정론도 없었다. 용기도 없었다.
기회주의와 눈치보기만이 있었다.
지난달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일부터 시작해 영결식이 있었던 29일까지 한국 언론이 보인 안쓰러운 행태다. 어느 언론사 하나 무게중심을 잡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 생전, 인간적 모멸감을 고려치 않고 두들겨대던 이른바 메이저 신문들은 서거 이후의 전국민적인 추모 분위기에 당황했다. 추모열기가 예상을 뛰어넘자 기존의 노무현 때리기 논조를 이내 버리고 애도 분위기에 코드를 맞췄다.
그동안의 ‘자신감’은 온데 간데 없었다. ‘상황이 좋지 않으니 일단 엎드리자’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적 모습이었다.
C일보의 대표 논객은 ‘전 대통령 서거’라는 중차대한 이슈를 외면하고 ‘북핵’을 썼다. 재임 때나 퇴임 때나 ‘바보 노무현’의 빈틈을 비집고 연일 비난했던 그였다.
다른 주요 보수 신문도 마찬가지다. ‘혹시 뭇매 맞을라’는 식이었다. 보수 신문들은 ‘죽음 앞에서의 예의’라고 항변하지만 노 전대통령 서거 전후의 너무나 대조적인 보도 태도에 어리둥절할 뿐이다.
이른바 ‘진보 언론’이라고 자칭하는 신문들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냉정함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진, 제목 모두 독자들의 감성에만 호소했다.
한 해외언론 서울 특파원의 얘기다. “국민적인 추모 분위기에서 언론사들이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보도를 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아쉬운 점은 ‘자살’이라는 데 대한 냉정한 진단을 내리는 언론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전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두고 한국 언론은 중심 없이 흔들렸다. 각자의 생존전략을 추구하는 데 급급했다.
가뜩이나 전통 미디어에 대한 수요자들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언론의 태도는 또 한번의 큰 신뢰추락을 자초하고 말았다.
노 전 대통령을 비극으로 몰아간 책임에서 언론은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진지하게 뒤돌아보고, 철저한 자기반성이 필요했다. 책임을 통감하고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고 치유하려는 구실이 요구됐다.
하지만 이런 기대가 과했는지도 모르겠다. 표면적으로는 통합을 외치지만 스스로도 다른 목소리를 감싸안을 마음의 여유가 없다. 아니 그런 마음도 없는 것 같다.
언론이 이렇게 자기방어막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국론이 하나로 뭉친다는 것은 지난(至難)한 일일 뿐이다.
‘아무도 원망하지 마라’는 노 전 대통령의 유지는 영결식이 끝나자마자 휴지조각이 되어가고 있다. 벌써부터 서로의 책임론으로 으르렁대고 있으니 말이다.
독자, 시청자는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힘도 갖고 있다. 기득권 언론세력들이 과거처럼 언로(言路)를 독점할 수도 없다. ‘정론 추구’라는 기본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정말로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 있음을 서둘러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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