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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영철 대법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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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 가운데 하나는 해방 직후일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벗어났다는 벅찬 환희와 감동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우리 민족은 곧 좌와 우로 갈라져 극한 대립과 갈등을 반복했다. 모든 것이 이념의 잣대로 재단되어졌고 그 속에서 진실은 왜곡되고 변형되어 형체를 찾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요즘 우리 신문, 방송을 보면서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나는 것은 필자만의 느낌이 아닐 것이다. 한 사건을 놓고 우리 언론들은 정반대의 두 가지 해석과 두 가지 평가를 내놓기 일쑤다. 광우병 사태가 그렇고, 역사 교과서 파동이 그러했으며, 대운하 건설 문제도 마찬가지다. 진실에 근거한 냉정한 판단 대신 이념을 바탕으로 한 뜨거운 논쟁만 난무하고 있다.
신영철 신임 대법관의 재판개입 의혹 역시 그런 식으로 다뤄졌다. 사법부의 보수 회귀 움직임에 일부 진보 성향의 판사가 조직적으로 반발하면서 불거진 파열음이라는 분석 아래 보수와 진보 언론들이 ‘그들만의 전쟁’을 치르는 꼴이었다.
하지만 자의적 해석과 주관적 판단에 빠져들기 쉬운 이념의 외피를 모두 벗겨내고 팩트만 정리해보자. 신영철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이 ‘촛불시위 사건’을 맡고 있는 소속 판사들에게 수차례에 걸쳐 “이 사건에 대한 위헌제청과 상관없이 현행법에 의거해 재판하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 재판진행을 독촉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특정 재판부에 촛불시위 관련 사건을 집중 배당했고 이에 대한 일부 법관의 항의를 받고도 여전히 상당수 사건을 지정배당했다는 사실도 있다. 촛불시위에 대한 위헌제청이 이뤄진 이후 이강국 헌재소장을 불쑥 찾아간 것도 드러났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을 자신의 이메일에 인용하면서 스스로의 생각을 가미해 작문했다는 내용이 있다.
재판독촉에 대해 신 대법관은 “법대로 하자고 했을 뿐”이라고 강변하지만 하급자인 해당 법관들은 수차례 반복되는 이메일에 ‘심리적 부담’을 느꼈다고 말했다. 신 대법관이 문제의 이메일을 왜 보냈는지 이념적인 해석을 하지 않더라도 재판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는 행동을 한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대법원 진상조사단도 신 대법관의 당시 언행이 ‘재판 관여 행위로 볼 소지가 있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게다가 법관들 중에서도 엘리트만 모인다는 서울지법의 판사들이 이에 대해 집단적으로 항의를 한 사실 자체가 그만큼 전례가 없이 도를 지나친 행위라는 증거다. 법원도 이를 계기로 배당과 관련한 제도 개선에 나선 상태다. 소속 판사의 위헌제청이 이뤄진 직후에 헌재소장을 찾아간 행위 역시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자, 이념의 기름기를 쫙 빼고 보니 진실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가. 신 대법관이 어떤 이념적 배경에서 한 행위인지, 이에 반발한 일부 판사들의 행위가 이념에 바탕을 둔 반동인지를 따지기 이전에 신 대법관의 처신은 잘못됐다. 결과적으로 개개 법관의 독립을 해칠 수 있는 법에 어긋난 행위다. 이렇게 명명백백한 문제조차 이념의 안경을 쓰고 보면, 진실은 간 데 없고 해석과 판단만 남게 된다.
일례로 보수 논객으로 이름 높은 한 언론인은 ‘신영철 대법관을 존경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좌익 성향의 판사들에 맞서 법의 정의를 지켜낸 영웅으로 추어올렸다. 또 “일부 판사들은 좌익폭도들에게 유달리 부드러운 판결을 내린다”며 “좌편향된 판사들에 대한 걱정이 법조계 안에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영철 대법관은 절대로 물러나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쯤 되면 그저 코미디로밖에 안 느껴진다.
언론이 이념에 취해 진실을 보는 눈이 흐려진다면 선동가와 무엇이 다를까? 신영철 대법관의 행위에 대한 시시비비를 명징하게 가릴 줄도 모르는 보수언론들. 자사논리적 프레임으로 덧씌워진 보도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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