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적 균형보도라도 해주길

몇 달 전 선보인 미국 영화 ‘바뀐 아이(Changeling)’가 요즘 세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발생한 실화를 근거로 한다. 미국 경찰은 잃어버린 아이를 찾으려는 엄마에게 엉뚱한 아이를 데려다 준다. 그런 뒤 “진짜 내 아이를 찾겠다”고 나선 엄마에 대해 “자녀를 양육하지 않으려는 히스테리 환자”로 몰아 정신병원에 가둬버린다는 내용이다. 경찰이 시민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과실을 은폐하기 위해 시민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다는 내용이다.

요즘 ‘용산참사’를 둘러싸고 한국의 정치권, 검·경찰이나 언론이 보이는 행태는 영화 ‘바뀐 아이’를 연상시킨다. 시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은 돈 있고 힘 있는 시민의 편을 들면서 돈 없고 힘 없는 시민들을 죄인으로 몰아가고 있다. 문제는 이 문제점을 지적해야 할 일부 국내 언론들도 검·경찰, 재개발조합 등의 편에서 이들과 똑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강경 진압 도중 발생한 ‘용산참사’에서 시민도 죽었고 경찰도 죽었다. 그런데도 우리의 언론은 철거민만 잘못했다고 보도하고, 그들만을 공격하고 있다.

용산 참사의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할 검찰은 경찰의 문제점을 밝히기는커녕 그들을 두둔하기에 바쁘다. 검찰은 물대포 쏘는 사람이 용역회사 사람인 증거가 없었다느니, 진압 당시 김석기 서울청장이 무전기를 꺼놓고 있었다느니 하는 금방 드러날 거짓말도 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대들던 우리의 젊고 용기있던 검사들은 어디에 갔나. 검찰은 청와대의 눈치를 너무 보는 것 같다. 검찰은 결국 경찰에게는 ‘공무’라는 이유로 무죄를, 철거민들에게는 ‘공무집행 방해’ 등 혐의로 기소했다. 아마도 세입자들은 아무 대항도 하지 않은 채 자발적으로 쫓겨 나가는 것이 해결책인가 보다.

김석기 경찰청장은 무전기를 꺼두었든, 켜두었든 이번 참사의 총체적 책임을 지고 일찌감치 사퇴했어야 했다. 그가 뒤늦게나마 자진사퇴한 것은 잘한 일이다.

언론의 보도행태도 가관이다. 국내 언론은 용산 참사를 계기로 서울시 재개발 사업의 여러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파헤치고 향후 유사한 충돌의 재발을 막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어야 했다. 언론은 이런 와중에 연쇄 살인범의 얼굴을 공개하느냐, 마느냐 하는 논란으로 용산 보도의 문제점을 비껴가려 했다.

언론은 무슨 특권을 가졌기에 ‘무죄추정’이라는 대원칙을 스스로 위반하는가. 연쇄 살인-성폭행범의 얼굴 공개가 얼마나 큰 공적 이익을 내는지 심각하고 진지하게 논의해 결정했어야 했다.

용산 참사의 현장에서 젊은 기자들은 철거민의 딱한 사정을 취재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데도 언론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짚고 향후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보도를 하지 않고 철거민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비하하는 발언을 여과 없이 전달했다. 철거민들은 사회적 약자다. 언론이 철거민을 너무 두둔하는 것도 문제지만, 정치권-검찰-경찰-용역직원 등 있는 자들의 편만을 드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언론은 공권력을 감시하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왜 우리 언론은 기계적인 균형 보도라도 보여주지 못하는가.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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