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중견 언론인은 “요즘 한국 사회를 보면 마치 판타지 소설을 읽는 듯하다”고 말했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는 얘기다. 포털사이트의 토론방에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한 누리꾼의 행위를 놓고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영장을 발부했고, 구속적부심까지 기각했다.
우리는 검찰이 지목한 ‘미네르바’ 박 모씨가 공익을 해할 의도를 가졌느냐는 차원에서 논란을 벌이는 것은 번지수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를 처벌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우리 국민이 최고의 엘리트 관료들이 다 모여 있다는 경제 부처를 믿지 않고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채 경제를 독학한 미네르바의 글을 믿게 됐는지를 자문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미네르바를 구속해 그의 입을 틀어막을 것이 아니라 왜 이렇게도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됐는지를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미네르바 박씨가 검찰 조사에서 “나도 내 글이 이렇게 큰 영향력을 발휘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고 하니 판타지 소설이 따로 없다.
그래, 검찰이야 원래 사람을 처벌하려는 것이 그 조직의 일이라고 인정해 주자. 그렇다 하더라도 법원마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는 조치에 동의한 것은 너무나 실망스럽다. 강자들만 발언할 수 있도록 하고 약자들에게는 발언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우리는 미네르바 사건 재판을 통해 우리 사회의 표현의 자유를 재점검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사회적 강자에게든, 약자에게든 보장돼야 한다.
우리는 작년 말부터 신문-방송법을 둘러싼 여야의 극심한 충돌을 목격했다. 이 격돌은 현재 소강상태에 있다. 하지만 다음달 여당과 야당, 언론계 종사자와 언론단체들 사이에 대격돌이 재연될 것이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얼마 전 “무슨 일이 있더라도 국회 내 폭력이 없도록 하겠다. 민주주의 절차가 살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여당의 생각은 여전히 바뀌지 않은 듯하다. 우리는 언론관련법을 소속 위원회 의원들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
요즘 언론계 종사자들은 수시로 “올해 월급이(보너스가) 제대로 나올 것 같으냐”는 말을 인사처럼 받는다. 올해 극심한 경제난은 우리 언론인들에게 어떤 희생을 강요할지 모른다. 올해 경제적 어려움은 중앙 언론사들과 지방 언론사들을 가리지 않고 엄습할 것이다. 언론 경영자들은 올해에도 경영상 무능이나 실패의 책임을 일선 기자들에게 전가할 것인가. 경영의 실패, 경영의 무능을 일선 기자들에게 돌리는 행태가 재연돼선 안 된다. 이런 와중에 들려오는 KBS 기자와 PD에 대한 파면-해임 소식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YTN 기자들에 대한 해임에 이어 나온 해고소식에 통탄을 금할 수 없다.
나라 안팎을 둘러보나, 언론계 안팎을 둘러보나 경제위기 속에서 올해 밝은 얘기들을 찾기가 어렵다. 우리 기자들은 올해 여러 어려움을 몸으로 부딪쳐야 하는가 보다.
설 연휴를 앞두고 고향에 가려니 마음도 조금 무겁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울한 마음만을 갖고 올 한 해를 살 수는 없다. 올해를 버텨내기 위해 굳은 의지와 새로운 희망과 강한 낙관으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우자. 우리 함께 매서운 추위도 이겨 내고, 건강도 챙기고, 어려움도 극복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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