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독재의 폭압이 서슬 퍼렇던 1970년대, 대한민국 거리에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허용될 수 없는 사치였다. 권력은 미니스커트에 젊음과 개성을 담아보려던 여인들에게 자를 갖다 대며 ‘무릎 위 20cm’를 경계로 범죄자를 만들어 버렸고, 학창시절과 군복무까지 빡빡머리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젊은이들의 장발엔 이발기계로 거침없이 고속도로를 뚫어버리기 일쑤였다. 80년대 들어선 또 다른 독재권력은 언론사에 기관원을 상주시키며 기사를 마음 내키는 대로 검열하며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렸다.
그렇게 단속과 검열의 잣대는 무소불위 독재권력의 칼이 되었다. 그때마다 검찰과 법원은 법의 권위로 권력의 방패를 자처하며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스스로 파괴하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권력은 ‘미풍양속’과 ‘사회정화’를 내세웠지만, 그런 행태가 국민의 뇌리에서 비판의 씨를 말리려는 불순한 것이었음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런데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 2009년, 다 죽은 줄 알았던 독재 시절의 조악한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 모씨 구속이 대표적 예다.
검찰이 내세운 박씨의 핵심적인 범죄 사실은 “지난해 12월 29일 ‘정부가 달러매수 금지 명령을 내렸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해 20억 달러 이상의 외환보유고를 손해 보게 했다”는 것이다. 법원도 이 논리를 그대로 수용해 영장을 발부했다. 하지만 정부가 실제로 시중은행에 달러매수 자제 협조요청을 한 사실이 드러났고, 검찰과 법원의 무리한 법 적용은 이미 거센 비난에 직면해 있다.
사실 검찰과 법원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경제위기는 없으며 취임하면 주가가 3천까지 갈 것’이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해 이를 믿고 투자한 중소기업과 서민 가계 등 투자자들에게 환율폭등과 물가폭등, 주가폭락으로 ‘막대한 손해’를 끼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구속영장이 청구돼야 하지 않겠는가? 빤히 보이는 여론통제의 속내를 애써 감추는 정부의 뻔뻔함과 권력의 주구가 돼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권한을 남용하는 검찰과 법원의 모습은 측은하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미네르바’ 구속이 우려스러운 것은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불순한 시도에 사법이 동원되는 파시스트적 행태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인터넷에서는 정부를 비판해 온 실력파 논객이 자취를 감추는 등 여론의 다양성에 심각한 위협이 초래되고 있다.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독재적 발상이 사법으로부터 법적 정당성을 부여받는 순간 어렵게 지켜온 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는 교살위기에 직면하고 만다. 법의 권위를 빌어 권력의 불순한 의도를 덧칠하고 눈앞의 위기는 모면할 수는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민의 입을 막고 눈과 귀를 가리려 했던 시도는 늘 국민적 저항에 무릎 꿇고 청산과 개혁의 대상이 됐던 역사의 교훈을 지금이야말로 정부와 사법 당국은 다시 돌아보기 바란다.
또 일부 보수언론들은 ‘미네르바’의 사생활 등을 거론하면서 본말이 전도된 논리로 민주주의와 언론표현의 자유가 처한 위기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언론 스스로 자기 목에 칼을 겨누는 기가 막힌 노릇이다.
일찍이 나치의 앞잡이 괴벨스는 “언론은 정부의 손 안에 있는 피아노가 돼야 한다”며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2009년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 서울 한복판에서도 유물이 된 줄 알았던 ‘괴벨스의 악취’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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