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테 홍 할머니, 47년만에 평양서 남편 상봉

제216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부문/중앙 유권하 기자


   
 
  ▲ 중앙 유권하 기자  
 
“꿈은 이루어진다.” 그랬다. 레나테 홍 할머니는 47년간 품어왔던 북한 남편 상봉의 꿈을 마침내 이뤘다. 외국언론들은 이를 가리켜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맞는 말이다. 북한당국이 정권 출범 후 외국인을 초청해 이산가족과의 상봉을 허용한 것 자체가 기적과 같은 일이다.

홍 할머니와의 첫 만남은 기자가 독일 특파원이었던 2006년 가을이었다. 그는 독일 동부의 대학도시 예나의 교민사회에선 알려진 분이었다. 생이별한 남편이 북한 출신이란 인연 때문일까. 현지 한국인들을 집으로 초대하거나 때론 자상한 후견인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자와의 접촉을 처음엔 망설였다. 그해 말 북한 방문을 추진하던 그의 사연이 알려지면 북한대사관이 불편해 할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10월쯤 다시 할머니에게 문안전화를 드렸다. 그의 목소리가 축 처져 있었다. “도와 주세요.” 할머니를 만나러 예나로 달려갔다. 그는 “답답한 마음에 한국 유학생을 통해 인터넷에 사연을 올렸지만 석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반응이 없다”며 낙담하고 있던 터였다. 무엇보다 할머니의 상심한 마음을 달래주어야 했다. 기자는 “신문에 보도하면 반드시 남편 소식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말았다. 기사를 송고하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한국에서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국내 언론은 침묵했다. 오히려 낭보는 독일에서 흘러나왔다. dpa 통신이 중앙일보 기사를 인용해 본국에 타전하면서 독일언론들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다 싶어 여론형성 작업에 나섰다. 독일정부, 적십자사, 북한 대사관에 청원서를 돌리고 평소 친분이 있던 독일 유력지 기자들을 찾아나섰다. “홍 할머니 사연은 세기적인 러브스토리에다 인도주의적인 소재, 더욱이 북한문제가 얽혀 있는 완벽한 기사거리”라고 설득했다. 대다수가 수긍했다. 그 덕분에 독일 유력지인 die Welt, SZ, FAZ가 보도를 이어나갔다. 당시 독일을 찾았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첫 결실이 나왔다. 남편 홍옥근씨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특종보도할 수 있었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홍 할머니를 한국에 초청한 일은 국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됐다. 금강산·판문점 방문, 적십자사 총재 및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통해 할머니는 상봉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지난해 여름에는 홍 할머니 부부가 44년 만에 편지왕래를 재개했다는 희소식을 접했지만 상봉을 위해 보도를 미뤘다. 지난 7월25일. 기자는 평양에서 “레나테 할머니 일가가 가족상봉을 했다”는 짧은 메일을 받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2006년 11월14일 첫 보도가 나온 지 18개월여 만이었다. 중앙 유권하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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