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헤드라인에 등장하는 단골이 ‘판도라의 상자’다.
이번엔 쌀직불금 부당 수령자 리스트를 담고 등장했다. ‘리스트’란 말에는 이미 엿보기 욕망을 자극하는 속성이 있는 터에다, 명단 공개에 따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어서 리스트의 공개 여부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중에는 언론인도 4백63명이나 포함돼 있다.
이 판도라의 상자가 조만간 열릴 것처럼 보인다. 여야 3당이 사회 지도층 명단 공개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특히 본보가 강남에 거주하는 2명의 전·현직 간부가 쌀직불금을 수령했다는 사실을 단독으로 밝혀낸 것은 ‘판도라상자’ 공개의 시작이 될 전망이다.
여야 3개 원내 교섭단체의 합의문에 따르면, 문제의 ‘불법 수령 의혹자’ 명단을 정부가 국정조사 개시 전까지 국회에 제출한다고 돼 있으니 날도 받아놓은 셈이다. 국정조사 개시일은 다음달 10일이다.
어쩌면 리스트가 공개되는 시점이 더 빨라질 수도 있다. 빠른 몇몇 언론사들은 벌써 ‘리스트’의 일부를 입수했거나, 탐사보도 기법을 통한 자체 파악에 착수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각 시민단체와 정치권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리스트’ 입수에 달려들고 있으니 쌀 직불금 국정 조사가 시작되기 전에 리스트가 공개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여론에 떠밀려 여야가 명단 공개에 합의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결국 몸통은 건드리지 못하고 깃털만 건드리는 것 아니겠냐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미 여권 수뇌부에서는 명단 공개에 따른 선의의 피해자 발생이 우려된다고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야여는 의혹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전수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자. 감사원이 복원한 명단이 17만 명이다. 이중 공무원, 공기업 임직원, 전문직 등 5만 명에 이르는 인사들의 명단을 추린 뒤 다시 최대한 압축한다 해도 실사 작업에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 지 짐작하기 쉽지 않다. 직불금 수령자 각 개인과 해당 마을 주민, 지차체 등에 대한 현장·대면 조사가 병행될 경우 그 방대한 작업이 국정조사 기간 안에 끝날 수나 있을 지 의문이다. 기술적 문제 뿐 아니라 법적인 절차나 반론권 등을 문제 삼아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여야의 셈법이 각각 있으니 이를 가지고 얼마든지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언론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불금 부당 수령 언론인 문제부터 선결(先決)해야 한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는 언론계 전체가 쌀직불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가 사회 지도층 리스트 가운데 언론인 불법 수령 의혹자 4백63명에 주목하는 이유다.
본인 명의로 수령한 언론인이 94명, 가족 명의로 수령한 언론인이 3백69명이다. 물론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으로 이정도이지, 그 이상의 숫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막대한 규모의 농지를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일부 언론 사주 및 2세 등이 포함되었는지 여부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쌀직불금 수령 언론인들은 외부에서 공개하기 전에 미리 스스로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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