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 수해현장을 가다
3년째 출동.. 이재민 보기 민망, 후배기자들 사흘간 반고립 상태서 투혼 '이번이 마지막이길'
박태서(KBS 사회부 기자)
7월의 마지막 날 주말 저녁. 보도국에 집중호우와 함께 태풍까지 밀려온다는 달갑잖은 기상예보가 날아들었다. '설마 올해에도 또?' 96년과 지난해 수해현장에 있었던 기자의 이런 순진한 기대는 그러나 불과 몇시간이 지나면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사회부의 전화통은 불이 나기 시작했다. 연천에서, 문산에서, 철원에서 집안에 물이 들어오고 강이 범람한다는 주민들의 숨넘어갈 듯한 절규가 이어졌다.
앞 뒤 잴 것도 없었다. 기본 취재장비 하나만 달랑메고 30여명의 취재팀이 현장에 즉시 투입됐다. 이때부터 시작된 수해뉴스 속보는 KBS 보도국과 전국 각 지역국의 취재, 카메라기자, 중계스탭 등 모두 천여 명이 매달린 만 사흘 간의 전쟁이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물난리에 눈물도, 한숨도 말라버린 이재민들의 고통도 컸겠지만 취재팀의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이런 대형이슈를 경험해 봐야 방송기자로 클 수 있다'는 닳고 닳은 격려를 후배들에게 건네기가 민망할 정도로 현장은 고달펐다.
맨 먼저 달려나간 보도국의 막내 홍성철, 신동곤 기자는 연천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만 사흘 간을 꼼짝없이 반 고립상태에서 취재했다. 길이 끊어졌기 때문이었다. 폭우 속의 철원을 취재한 유민철, 박종훈 기자는 취재테잎 송출을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거센 물살을 헤쳤다.
현장의 모습을 담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한 카메라기자들의 분투가 계속되는 가운데 ENG카메라는 연일 빗물을 먹고 먹통이 되기 일쑤였다. 잠을 못 자고 식사를 거르기는 약과였다. 하지만 이재민들의 고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기자들에게 피곤함을 불평하기란 차라리 사치스런 투정에 가까웠다.
이런 애환 속에서도 이번 취재와 방송은 나름대로 질서 있게 이뤄졌다. 인력과 장비 동원 그리고 지휘체계 구성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은 KBS 방송제작가이드라인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번 재해방송에서도 대피방법의 안내와 함께 구체적인 구호대책 등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어 보다 나은 재난방송을 위한 방송종사자로서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아울러 끓일 물조차 없어 생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갈아입을 옷 하나 없이 대피소에서 밤을 지샌 수재민들을 생각하면 제대로 된 나라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재해대책이 낳은 이번 수해는 결국인재요,관재(官災)였다는 점에서 관계자들에 대한 엄중한 책임추궁과 함께 재발방지를 위한 심층보도에 전력해야 한다고 본다. 끝으로 이번 재해방송을 두고 사내외에서 여러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는 모양인데 그런 이야기는 전혀 못 들어도 좋으니 제발 그 지긋지긋한 수해는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하고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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