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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조성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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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진, 예슬이 유괴 살해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3월의 주말 오후였다. 제보 전화를 받던 후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느 아파트라고요?” 일산의 한 아파트 주민이라고만 밝힌 남자는 대화를 오래 끌지 않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 성추행범 제보를 기다리는 전단지가 붙어있다”는 전화 한 통은 그렇게 3월의 마지막 날을 뜨겁게 달군 보도의 단초를 제공했다.
피해 어린이의 부모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부모는 오로지 범인을 빨리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제보 전단을 만들기 위해 직접 관리사무소에서 복사한 CCTV를 공개했다. CCTV 화면을 확보한 뒤 보도국은 분주해졌다. 현장이 고스란히 담긴 충격적인 화면이 처음 공개되는 것이기도 했지만, 아파트 엘리베이터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서 일어난 끔찍한 범행을 고발하게 됐기 때문이다.
CCTV 화면을 통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는 리포트와, 경찰의 안이한 초동 대응을 파헤치는 리포트, 비슷한 상황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리포트에 6명의 기자가 매달렸다.
파장은 컸다. 보도가 나간 직후 경찰은 부랴부랴 수사팀을 확대해 범인 검거에 나섰고, 유세 중이던 국회의원 후보들이 수사본부를 찾았다. 다음날 경찰의 미온적 대응을 질책한 대통령은 급기야 현장을 찾아 “빨리 범인을 잡으라”고 호통쳤다.
범인은 곧 잡혔고 세상은 다시 평온해졌다. 하지만 아직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불안하다. 마침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선 학생들이 성인 음란물을 따라하다가 동료 학생들을 성폭행까지 하는 믿기 어려운 사건이 일어났다. 아니나 다를까, 상급기관인 교육청은 이를 쉬쉬하려고 하고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보도를 할 때마다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는 데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는 생각은 피할 수 없다.
이번 일산 초등생 납치 미수 사건 보도는 아이들을 안심하고 키울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꼬집는 기사였지만, 개인적으론 다시 뉴스에서 보고 싶지 않은 뉴스다. 사회가 질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종류의 불안에서 해방된다는 것이 아닐까. 딸이 받을 충격을 감수하고, CCTV 화면을 전국에 공개한 피해 어린이의 부모가 내린 결단이 소중한 촉매 역할을 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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